지난 2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4대 그룹 간담회에서 특별히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참석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권 부회장이 유럽 출장을 갔다가 당일 새벽에 도착한 후 바로 간담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권 부회장은 이달 초 미국 출장에 이어 유럽연합(EU)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유럽까지 다녀왔다. 귀국 당일 공정위원장 간담회에 참석한 데 이어 26~27일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를 주재한 후 28일부터 다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순방길에 함께 한다.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는 행보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 속에 권 부회장이 경영 전반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며 삼성 다잡기에 나서고 있다. 삼성그룹의 2인자였던 최지성 전 부회장이 퇴진한 후 그룹 내에서 건재한 부회장은 권 부회장이 유일하다.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이자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인 권 부회장은 외부 행보에 적극적인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사실상 총수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공정위 간담회만 해도 권 부회장이 직접 참석한 것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출장 일정이 워낙 빡빡했던데다 다른 그룹에서 사장급이 참석한 만큼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이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권 부회장은 새 정부와 재계 간 첫 대면이라는 점에서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 측에서 처음부터 권 부회장이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의 이번주 일정도 숨 가쁘다. 먼저 26~27일에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가 열린다. 이는 삼성전자의 대표적 경영전략회의로 총수 부재 속에 권 부회장이 ‘비상경영’의 주도권을 잡고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DS 부문과 가전(CE)·IT모바일(IM) 부문으로 나뉘어 개최되는 이번 회의는 각각 경기 용인 기흥사업장과 수원 본사에서 진행되며 임원과 해외법인장 등 100여명이 참석한다.
특히 권 부회장이 담당하는 DS 부문은 ‘슈퍼 사이클’이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 시장에서 초격차 전략을 유지하기 위한 평택공장 가동 및 차세대 낸드플래시 판매 전략이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최근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업체인 대만 TSMC에 애플·퀄컴 등 대형 고객사의 물량을 빼앗기면서 생산라인 가동 차질이 우려되는 것과 관련된 대책 등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전략회의가 끝난 후 28일부터 권 부회장은 문 대통령의 첫 방미 일정에 삼성을 대표해서 동행한다. 이 역시 윤부근 삼성전자 CE담당 사장이 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권 부회장이 직접 참석하게 됐다. 권 부회장은 방문길에서 삼성전자 현지 가전공장 건설계획을 공식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를 새 후보지로 사실상 낙점하고 최종 조율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