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성 망막색소변성으로 시력을 잃은 지 10년이 지난 중년 여성에게 인공망막 기기를 이식하는 수술이 국내 처음으로 성공했다.
서울아산병원 안과 윤영희 교수팀은 망막색소변성 환자 이화정(54.여)씨에게 지난달 26일 인공망막 기기 ‘아르구스2’를 다섯 시간에 걸쳐 이식하고 시력 회복을 위한 후속 재활치료를 진행 중이라고 29일 밝혔다.
망막색소변성은 가장 흔한 유전성 망막질환으로, 태어날 때는 정상 시력이지만 이후 망막 시세포의 기능에 점진적으로 장애가 발생한다. 인구 4천명당 1명 꼴로 발생하는 이 질환은 환자의 유전 형태에 따라 발병 시기가 다양하다. 초기에는 야맹증을 주로 호소하고 시야 손상이 진행되며 말기로 갈수록 중심부 망막이 변성되면서 중심 시력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아 실명에까지 이를 수 있다.
망막색소변성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환자는 국내에만 약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질환은 약물치료가 불가능하다. 또 유전자치료제나 줄기세포치료제가 개발 중이지만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치료에 쓰일 수 있는 장비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안과연구소의 마크 후마윤(Mark Humayun) 박사가 개발한 인공망막 기기 아르구스2가 유일하다.
이 인공망막은 안구 내부 망막 위에 시각 정보 수신기와 백금 칩을 이식하고, 안경에 부착된 외부 카메라 및 특수 휴대용 컴퓨터 기기와 연동시켜 시각중추에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엄밀히 보면 인공망막은 아니지만, 망막의 기능을 하는 전자기기를 안구 내외부에 장착함으로써 시력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유럽, 중동 등지에서는 망막색소변성 환자 230여명에게 이 수술이 시행됐다. 가장 큰 단점은 환자 한 명당 약 2억원이 드는 비용이다.
이번 수술은 윤영희 교수팀과 마크 후마윤 박사가 함께 집도했다.
이화정씨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좌절했지만, 수술 이후 도로에 차가 지나가고 있는지, 눈앞에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게 돼 감격했다”면서 “내 시력에 의한 독립적인 생활은 나와 같은 망막색소변성 환자들에게 가장 큰 희망”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씨는 현재 정상적인 회복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앞으로 20회에 걸쳐 재활치료를 더 받을 예정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사물이나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공간이 어떤 시각패턴으로 뇌에 인식되는지 등을 훈련하고, 이를 통해 기본적인 일상생활 및 독립 보행을 가능케 하는 게 목표다.
수술을 집도한 윤영희 교수는 “아직 치료법이 없는 망막색소변성 환자에게 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데 의미가 있다”면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공망막 이식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국내뿐만 아니라 주변국 환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