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악수를 할 때 그들도 우리 아빠를 만날 수 있는 거잖아요.”
재미동포 골퍼 대니얼 강(25)의 오른손 손날에는 한글 문신이 있다. ‘아빠’라는 두 글자다. 아버지 강계성씨를 지난 2013년 암으로 떠나보낸 뒤 새긴 문신이다. 3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데뷔 첫 승을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장식한 대니얼 강은 “경기 내내 매 순간 아버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부산 출신의 아버지는 효림이라는 한글 이름으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한 딸에게 태권도와 골프를 가르쳤다. 아마추어 시절 캐디로 우승의 기쁨을 나눴던 아버지는 그러나 뇌와 폐에 퍼진 암으로 딸의 프로 첫 승은 끝내 지켜보지 못했다. 대니얼 강은 그러나 “아빠와 함께 경기하는 느낌이었다. 내 옆에 아빠가 와 계신 것 같았다”며 감격해 했다.
이날 미국 일리노이주 올림피아필즈CC(파71)에서 끝난 시즌 두 번째 메이저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대니얼 강은 합계 13언더파 271타로 우승했다. 공동 선두로 맞은 4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3개로 3타를 줄여 브룩 헨더슨(캐나다)을 1타 차로 따돌렸다. 우승상금은 52만5,000달러(약 6억원). 2012년 LPGA 투어 데뷔 후 6년 차에, 144개 대회 출전(아마추어 시절 포함) 만에 거둔 첫 승이다. 데뷔 첫 승을 메이저대회에서 거둔 것은 2014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자 모 마틴(미국) 이후 3년 만이다.
공동 선두로 나서 2년 만의 통산 2승을 바라봤던 최운정은 타수를 줄이지 못해 10언더파 단독 3위에 만족해야 했다. 3년 만에 미국 땅에서 열린 LPGA 투어 대회에 참가한 신지애는 3타를 잃어 5언더파 공동 11위, 세계랭킹 1위로 처음 나선 유소연은 4언더파 공동 14위로 마쳤다.
◇가족이 함께 만든 143전 144기=대니얼 강은 지난해 왼손목 골절과 목 디스크, 안과(익상편) 수술 등을 딛고 올해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다. 13번홀(파4) 7m 버디 등 11~14번홀 네 홀 연속 버디를 잡은 대니얼 강. 그는 2타 차 선두로 맞은 16번홀(파4) 보기 위기에서 6.5m의 어려운 파 퍼트를 넣어 한숨을 돌렸다. 17번홀(파3) 보기로 1타 차까지 쫓겼지만 18번홀(파5) 2온에 이은 짧은 버디 퍼트로 우승을 확정했다.
대니얼 강은 마지막 홀에서 2010년 US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 당시 아버지의 속삭임이 떠올랐다고 한다. 넣으면 우승이 확정되는 마지막 퍼트를 앞두고 캐디인 아버지는 “이걸 넣으면 TV를 사줄게”라고 열여덟 살 딸에게 약속했다. 대니얼 강은 “이상하게 그때 기억이 떠오르면서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고 했다. 오빠 알렉스 강의 역할도 컸다. 미국프로골프(PGA)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 멤버인 알렉스 강은 대회장인 올림피아필즈CC에서 경기한 경험이 있다. 연습 라운드에 동생과 동행한 알렉스 강은 타수를 잃기 쉬운 위험한 지점을 사진으로 찍어둔 뒤 공략법 등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언론은 “손에 쥔 아버지의 숨결과 머리에 새긴 오빠의 조언이 대니얼 강을 우승으로 안내했다”고 보도했다. 18번홀 그린에서 한의사 출신의 어머니 그레이스 리와 눈물의 포옹을 나눈 대니얼 강은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가족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미스코리아 출신인 어머니를 꼭 닮아서인지 대니얼 강은 올 초 미국 골프닷컴이 뽑은 ‘골프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5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선수가 좋아하는 선수=아버지의 고향인 부산에서 유아기를 보낸 대니얼 강은 미국으로 건너간 뒤 열다섯 살에 메이저대회 US 여자오픈 출전권을 따낼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다. 아마추어 최고 권위 대회인 US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을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으로 제패하기도 했다. 15년 만의 대기록이었다. 아마추어 시절의 화려한 경력에 비춰보면 프로 첫 승은 많이 늦은 편이다. 2012년 킹스밀 챔피언십 공동 3위가 이번 우승 전 최고 성적인데 올 시즌은 네 차례 톱10 진입으로 희망을 부풀리다 결국 첫 승까지 내달렸다.
캘리포니아 남부 말리부의 페퍼다인대 출신인 대니얼 강은 지역 특성과 골프라는 운동의 성격상 어릴 때부터 유명인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났다. 그중에서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와 올림픽 육상 10종 경기 금메달리스트이자 유명 방송인 케이틀린 제너와는 ‘절친’ 사이다. 그레츠키와 제너는 이번 대회 기간에 수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대니얼 강을 응원했다. 대니얼 강은 어릴 때부터 이들에게서 스포츠맨십을 배웠다고 한다. 리디아 고와 미셸 위, 제시카 코르다, 폴라 크리머, 수잔 페테르센 등 LPGA 투어의 많은 동료도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니얼 강의 우승을 제 일처럼 기뻐했다. 대니얼 강은 “아마추어 때와 달리 지독하게 터지지 않는 우승에 크게 실망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들의 응원과 조언이 강박을 떨치게 했다”면서 “그렇게 바라던 우승을 했지만 내 목표는 변함없다. 어제의 나보다 더 발전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