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5일 취임하면서 불평등·서열화 교육을 바로잡겠다며 외고·자사고 폐지 추진을 기정사실화했다. 자사고·외고의 해당 학교 및 학부모들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이 이들 학교의 폐지를 촉구하는 연합 시민단체를 출범시키는 등 폐지 찬반 양측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폐지 찬성 측은 자사고·외고가 명문대 진학의 통로 역할만 하면서 고교 서열화를 부추기고 공교육을 황폐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오히려 일반고 간의 심각한 학력 격차와 학교 서열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고 자사고·외고의 일방적 폐지로 학생과 학부모들만 혼란과 피해를 안게 된다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이제 보통교육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국제고 등 특수 유형의 학교들을 통합해야 할 때가 됐다.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나 태어나 12년 동안 국가가 제공하는 공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그런데도 등록금으로 교육 기회를 계층적으로 차별화하고 있는 고등학교를 유지한다는 것은 시대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의 고등학교 교육 현실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보편교육이 실현돼야 하는 고등학교에서 차별화·계층화·서열화가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목고·자사고·국제고의 난립으로 누구나 보편적·질적으로 우수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공교육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들 학교의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우선 외고·국제고 등 특목고는 수월성 교육(우수 인재 교육)이라는 취지와 달리 명문대 진학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특목고는 교육과정의 특성화보다 입시 준비를 위한 교육과정 운영을 통한 명문대 진학 결과로 학부모들의 교육적 욕망을 부추기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이명박 정부가 소위 말하는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로 자사고 50여개를 급조하면서 고교 서열화·계층화는 가속화했다. 일반 학교의 슬럼화는 당연한 결과이며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 단계의 사교육시장은 더욱 확대됐다. 사실 자사고는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자립형사립고’ 정책을 시범 운영했다. 워낙 이 정책이 갖는 파생 효과가 부정적일 것이라는 판단에 3년간 시범 운영하고 결과를 평가한 후 정책을 조율하기로 했다. 그런데 3년으로는 새로운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3년 시범 운영을 연장한 바 있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었는데 그전 정책에 대한 평가도 하지 않고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이름만 바꾼 채 50여개로 대폭 확대했다. 정책 추진 단계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둘째, 학교제도는 법률적 근거를 가져야 한다는 교육법정주의를 지켜야 함에도 자사고의 경우 법률 개정 없이 시행령 개정으로 근거를 삼고 있다.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도 않고 정권의 입맛대로 학교제도를 황폐화하는 수많은 교육 관련 시행령을 남발한 지난 정부 교육정책 담당자들의 과오는 참으로 신랄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교육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 문제점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회적 비용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만시지탄을 느끼게 된다. 차제에 학교제도와 관련된 교육법을 정비해 공교육의 안정성과 합법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교육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고교 다양화라는 미명 아래 공교육에서 차별화 교육을 실시하고 그 결과가 대학과 사회 진로에 반영되는 현재의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교육 정의란 태어난 가정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교육으로 자신의 삶의 기회를 공정하게 추구할 수 있어야만 실현된다. 교육을 통한 사회 이동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고교 단계의 차별화 체제는 또 다른 교육 적폐다. 학생들 사이에서 ‘6두품’ 이야기가 나온다. 특목고·자사고는 ‘성골’이고 일반고 출신은 6두품이란다.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게 된다면 교육을 통한 사회 통합이 아니라 사회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셈이다.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가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을 준비시켜줘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고 학생들이 즐거이 체험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을 더 많이 개설해나가야 한다. 차별화가 아닌 공존·협력·소통하는 공동체 의식을 학교를 통해 길러줘야 하며 이를 위해 고교체제의 개편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는 혁신학교를 통해 모든 아이가 행복한 학교를 만든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소수의 몇몇 학교, 소수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을 위한 공교육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자녀만을 소중히 여기는 자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함께하는 공동체를 위한 교육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새 정부의 교육부가 해야 할 우선 과제가 공교육의 위상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며 그 출발은 고교체제의 단순화에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