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감산 합의를 이행하며 고군분투해온 산유국들 사이에서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리비아 등이 ‘나 홀로’ 증산에 나서며 불협화음을 내면서 ‘남 좋을 일’만 한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감산 합의국들이 공급가를 낮추거나 추가 감산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 시작했다.
5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다음달부터 아시아에 공급하는 초경질유과 경질유 가격을 각각 배럴당 90센트, 20센트 낮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람코는 미국에 수출하는 경질유 가격은 동결하고 지중해와 북서유럽 국가로 수출하는 경질유 가격은 각각 45센트, 55센트 인상했지만 아시아 공급가는 낮췄다.
일반적으로 3·4분기는 정제가 재개되기 때문에 수요가 높아 가격이 올라야 정상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 조치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외신들은 일부 OPEC 회원국 등이 증산을 감행하면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는 최근 내전 등의 이유로 감산 대상에서 제외된 점을 이용해 하루 원유 생산량을 각각 17만배럴, 25만배럴 늘렸다. 특히 미국은 셰일오일 생산을 필두로 ‘3대 산유국’으로까지 급부상하며 아시아 지역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아시아는 중동국들이 미국·러시아와 각축전을 벌이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라며 “아시아 공급가를 낮추면 사우디아라비아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OPEC과 협력했던 러시아도 더 이상 감산 노력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블룸버그는 현지 관료들을 인용해 “러시아가 이달 말 열리는 OPEC 장관급 회의에서 어떤 추가 감산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감산 합의가 내년 3월까지 연장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또 공급량을 낮추면 시장에 ‘유가 상승을 이끌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OPEC과 러시아는 올 상반기 하루 생산량을 180만배럴로 제한했고 이를 내년 3월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감산무용론 속에 원유 시장을 낙관했던 전문가들도 부정적으로 돌아서며 산유국들의 불협화음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유가 회복을 자신해왔던 애스텐벡캐피털의 앤디 홀은 이번주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유가 전망에 대한 입장변화를 전했다. 그는 “투자심리는 새로운 저점으로 추락했고 펀더멘털(기초적 여건)마저 악화됐다”며 “유가가 배럴당 50달러선 혹은 이 밑에 머물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