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여명]북핵 운전사가 서툴면 손님은 내린다

文, 미중일 설득 북핵 핸들 잡아

트럼프·아베는 손님으로 동승

베를린 구상 통해 한반도 평화 제안

朴 드레스덴 선언 전철 안 밟으려면

북핵 조급증·대화 위한 대화는 금물

北 변화시킬 정교한 실행방안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 핸들’을 잡았다. 스트롱맨을 자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문 대통령에게 북한을 설득해보라며 제한된 범위에서 주도권을 인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고집한 ‘전략적 인내’ 정책이 수명을 다한 만큼 대화와 협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보자는 데 양국 정상이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다.

결국 문 대통령이 북핵 해결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택시 운전사가 됐고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동맹 절친’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뒷좌석에 손님으로 탑승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시동을 걸기도 전에 이상 신호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의 골칫덩어리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보란 듯이 미국 서부 지역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렸고 “미국에 크고 작은 선물을 더 안겨주겠다”며 희번덕거리고 있다. 언제 6차 핵실험을 강행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을 연출하며 몸값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한반도 ‘안보 체스판’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북핵 해법으로 표면적으로는 제재를 앞세우고 있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대화와 협상에 방점을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독일의 민간 싱크탱크인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올바른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 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선물 보따리도 풀어놓았다. 흡수통일을 배제하고, 북한 체제를 보장하는 비핵화를 추구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한반도 경제공동체도 추진하겠다는 ‘그랜드 플랜’을 제시했다.

이른바 ‘베를린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7일 문 대통령과의 만찬 자리에서 우리 정부의 ‘운전대론’에 공감을 표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의 주도적 역할에 지지를 보냈다. 여기에 ‘박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관련기사



우선 북한이 선뜻 대화에 나올 가능성이 현재로는 크지 않다. 문 대통령은 대화로 북핵 개발을 동결하고 이후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논의하자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비핵화는 협상탁(卓)에 아예 올려놓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베를린 구상의 출발점인 대화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미일은 강력한 추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며 오히려 북한을 애써 두둔하고 있다. 6일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러시아의 반대로 대북 규탄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것은 북핵 해법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 주석은 “북한과 우리는 혈맹”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견제구를 날리고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연대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처럼 한미일과 중러 간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틈을 이용해 북한이 ICBM 추가 도발에 나서거나 6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공조가 무너지는 지점에서 북한은 도발 수위를 높이게 되고 그만큼 문 대통령의 대화 반경은 좁아지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독일에서 통일대박론을 표방하며 거창하게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지만 북한은 먼 산 바라보듯 콧방귀만 뀌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을 실행할 수 있는 정교하고 세밀한 장기 플랜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드레스덴 선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혹여 문 대통령이 ‘대화를 위한 대화’에 매몰되거나 ‘북핵 조급증’에 걸려 엉성한 ‘북핵 내비게이션’을 들고 운전한다면 손님들은 기겁을 하고 택시에서 내리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내 보수세력과 미국을 설득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 사자의 용기를 보였다. 이제는 북한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정교한 실행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여우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서정명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