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우린 이 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이규진 성장기업부장

대선때 중기부 출범 약속한 野3당

文정부 조각 핑계로 어깃장만 놔

3조5,000억 中企 추경도 모르쇠

배신 3당 기억했다 표로 심판해야





날이 갈수록 여야 대립이 격해지면서 국회가 또 개점휴업이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정쟁에 빠져 화급을 다투는 민생법안과 예산안을 방치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지만 요즘 국회 모습은 국민들에게 배신 그 자체다.


특히 중소기업부 출범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탄식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세력들이 개미군단인 중소 업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키지도 않을 공약을 남발한 역사는 뿌리가 깊다. 장관 부처인 중소기업부 설치를 번복한 첫 대통령은 YS였다.

그는 ‘중소기업부 배신 1호’로 기억된다. 지난 1993년 정권을 잡은 뒤 김영삼 대통령은 바로 약속을 어겼다. 차관급 부처인 중소기업청을 만드는 것으로 중소 업계를 달랬다.

‘중소기업부 배신 2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후보 시절 중소기업부 승격을 내세웠던 DJ는 권좌에 오른 뒤 허울뿐인 중소기업특별위원회로 중소기업부를 대체했다.

이후 대통령 후보들은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함부로 내뱉지 않았던 것 같다. 중소기업부 설치를 말했지만 낙마한 정동영·문국현 등 여러 후보는 차치하자. 정권을 잡았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부를 공약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부에 부정적이었다. 최순실 사태에서 배경을 추측해볼 수 있다.


반면 5월 대선에서는 모든 정치세력이 한목소리로 중소기업부 승격을 외쳤다. 그중 유력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이 됐고 약속은 지켜졌다. 6월5일 고위당정청회의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설치를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안이 확정돼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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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십 년 동안의 중소 업계의 숙원인 중소기업부 출범은 국회 통과라는 마지막 관문만 남겨놓고 있다. 그런데 홍준표·안철수·유승민 전 대선후보가 중소기업부 설치를 공약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돼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바른정당은 이 법안을 외면하고 있다. 3당은 문재인 정부의 조각이 맘에 안 든다며 국회 파업중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연원을 따져보면 3당 합당으로 YS 정권을 탄생시킨 민주자유당이다. 이 보수세력들은 이미 중소 업계를 배신한 전력이 있다. 이 중에는 과거 중소기업청장을 지내 누구보다 중소 업계의 현실과 애로를 잘 알 것처럼 보이는 의원도 있다. 국민의당 역시 DJ 정권을 탄생시킨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 중 하나다. 배신의 역사는 반복된다.

중소기업인들은 묻는다. 대체 대선후보들이 공약했고 중립적 영역에 있는 중소기업부 승격 법안을 왜 정쟁의 볼모로 삼아 지연시키고 있는지를.

다시 말해 중소기업을 육성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창업국가를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자고 대선 과정에서 ‘중소기업부 컨센서스’를 이룬 정당들이 대선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표변해도 되는 것인지 어이없어하고 있다. 아울러 추경예산안 중 소상공인 대출자금 등 3조5,0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분야 예산안이 왜 통과가 안 되는지 도통 이해를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부 승격이 정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평소 이들 정치세력이 얼마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업신여겨왔는지를 방증한다. 이들 속에는 경제적, 사회적 약자인 학교 급식 근로자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막말을 내뱉는 자도 섞여 있지 않은가.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바른정당의 국회의원들은 무더위 속에서 하루하루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주름진 검은 얼굴이 그저 표로만 보일 것이다. 지금은 선거철이 아니니 이들의 고통이 추경예산안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이 여름 중소 업계와 국민들은 반(反)중소기업·반(反)소상공인의 3당 행태를 똑똑히 뇌리에 새기고 있다. 3년 뒤 이들이 유세에 나와 표를 달라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입에 올린다면 국민들은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나는 지난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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