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4일 공개한 전임 정부 민정수석실 작성 문건 300종은 경제·정치·사회 분야 등에서 민감한 현안들에 대한 회의 및 조사자료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이슈, 경제민주화 및 금산분리 문제 등과 관련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경제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또한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한 축으로 꼽히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정황을 뒷받침하는 듯한 문건들도 함께 공개돼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판에도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문건 발견 및 발표 경위는=이번 문건들이 발견된 시점은 이달 3일이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설명했다. 전임 정부의 민정수석실 내 사정 부문 사무공간에 있던 캐비닛에 해당 문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문건은 현 청와대팀이 민정수석실 인원을 충원하기 위해 사무공간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이를 11일이 지나서야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중요한 부분이고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법리적 검토를 필요로 했다”고 박 대변인은 설명했다. 이처럼 민감한 문서가 여태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전 정권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관계자는 “캐비닛이 잘 사용하지 않던 공간에 있었을 것으로 해석된다”며 “(새 정부로 업무 인수인계 당시) 탄핵 여파로 (기존 청와대팀에) 컨트롤타워가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문건은 누가 언제 작성했나=이번 문건들의 생성은 전임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이뤄졌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중 이명박 정부 시절의 것은 지난 2013년 1월 생산된 1건이다. 나머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자료다. 이중 수석비서관회의 자료는 2014년 6월11일부터 2015년 6월24일 작성됐다. 그 이외의 문건인(장관 후보자 등의 인사자료와 국민연금 의결권 등 각종 현안 검토자료, 지방선거 판세 전망 등 기타자료)는 2013년 3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작성됐는데 총 200여건에 달한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2014년 6월1일부터 2015년 1월까지 활동하고 이어서 2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재임하게 된다. 우 전 수석은 바통을 이어받기 전에도 2014년 5월부터 민정수석 휘하의 민정비서관으로 재직했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된 문건들중 상당수의 작성 시기는 두 전직 민정수석의 현역 재임 시절과 겹친다.
이중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 문건은 김 전 수석이 아닌 다른 사람의 필체로 보인다는 게 청와대 측의 전언이다. 필적 감정 결과 우 전 수석이 쓴 메모로 드러날 경우 우 전 수석이 정조준을 당할 수도 있다.
◇메모 내용은=이날 공개된 문건 중 자세하게 내용까지 소개된 것은 주로 국민연금 관련 조사문건과 고 김 전 수석의 메모다.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문건에는 관련 조항, 찬반 입장, 언론 보도, 국민연금기금 의결형 행사지침, 펜으로 쓴 메모 원본, 또 다른 메모의 복사본, 청와대 업무용 메일을 출력한 문건들이 들어 있었다. 이 중에는 자필 메모가 담겨 있다. 그 내용은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등이라고 박 대변인은 소개했다. 또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대응’ ‘금산분리 원칙 규제완화 지원’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발견된 문건 내용 중에는 ‘전경련 부회장 오찬 관련, 경제입법 독소조항 개선 방안’ 등 또 다른 경제현안 이슈도 포함돼 있다.
정치·사회적 이슈와 관련해서는 ‘건전 보수권을 국정 우군으로 적극 활용’ ‘문체부 주요 간부 검토’ ‘국·실장 전원 검증 대상’ ‘문체부 4대 기금 집행부서 인사 분석’ 등의 내용이 문건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6월 지방선거 초판 판세 및 전망’이라는 제목의 자료도 곁들여졌다.
고 김 수석의 자필 메모에는 ‘일부 언론 간첩사건 무죄 판결-조선 간첩에 관대한 판사, 차제 정보 수사 협업으로 신속 특별행사법 입법토록’ ‘전교조 국사교과서 조직적 추진-교육부 외에 애국단체 우익단체 연합적으로-전사들을 조직, 반대 선언 공표’ 등이 담겼다고 소개됐다.
◇발표 의도는=청와대의 전격적인 문건 발표 공개 배경에 대해서는 분석이 다양하다. 그중에는 최근 야권의 공세에 따른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의 낙마로 한발 물러섰던 청와대가 다시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임 정권의 내밀한 자료를 풀어 정국 주도권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있다. 또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검찰 수사에 쐐기를 박아 친박계의 부활을 원천차단하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반면 당연한 절차적 수순이라는 견해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통령 지정기록물도 아닌데 지금 공개하지 않으면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국가정보원에서 적폐청산태스크포스(TF)가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계기로 적폐청산과 개혁 드라이브에 동력을 얻을 수 있는 측면도 노렸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민병권·김현상·박형윤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