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 유어 마우스 앤드 어택(Shut your mouth and attack)’.
17일(한국시간) 트럼프 내셔널 골프장의 US 여자오픈 우승자 기자회견장에서는 이 용어가 화제에 올랐다. 박성현(24·KEB하나은행)의 별명이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것을 전해 들은 현지 취재진이 이에 대한 질문을 해오자 통역이 영어로 풀어 설명한 것이다. 세계랭킹 11위에서 개인 최고인 5위로 올라선 박성현은 “제가 다른 여자선수들과 다르게 많이 공격적인 편이다. 박성현의 플레이는 무조건 공격, 닥치고 공격이라는 뜻에서 팬분들이 지어준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대학 축구감독 출신의 아버지와 태권도 공인 3단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성현은 주니어 시절부터 엄청난 드라이버 샷 거리로 유명했다.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기록에서도 평균 272야드로 미국의 자존심 렉시 톰프슨(274야드)과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번 US 여자오픈에서 박성현을 우승으로 이끈 것은 닥공과 조화를 이룬 정교함이었다. 자칫하면 연장 승부를 허용할 수 있는 이날 18번홀(파5) 보기 위기에서 박성현을 구한 것도 정교한 어프로치 샷이었다. 볼과 지면 사이에 공간이 없어 볼만 정확히 쳐내야 하는 상황. 길면 반대편 물로 흘러버릴 수 있고 짧으면 제자리로 돌아올 위험이 큰 어려운 쇼트게임을 박성현은 이상적인 범프앤드런(낮은 탄도로 굴려서 보내는 기술)으로 홀에 붙여놓았다. 사실상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이었다. 박성현의 우승으로 한국선수는 최근 10년간 US 여자오픈에서 7차례 우승하는 초강세를 이어갔다.
경기 후 박성현은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랄까, 이상하다. 이 대회 전까지 우승 기회가 많았는데 여기서 우승하게 돼 정말 기쁘다”며 “그동안 쇼트게임이 약점이었다는 것은 팬들도 잘 안다. 이번 대회장은 그린 주변 어프로치 샷이 어려운 것을 알고 신경 써서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 홀 어프로치 샷 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나서 연습한 대로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반복적인 연습 덕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저도 치고 나서 놀랄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박성현은 그동안 퍼트 때문에 마지막 단추를 끼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라운드당 퍼트 수 28.5개(공동 8위)의 짠물 퍼트를 뽐냈다. 특히 3·4라운드 평균 퍼트 수는 불과 27.5개였다.
박성현은 “캐디(데이비드 존스)의 역할이 정말 컸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작은 농담을 던져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했다. 존스는 미국 진출 후 박성현의 세 번째 캐디다. 과거 최나연과 전인지의 골프백을 멨던 존스는 지난달 초부터 박성현과 호흡을 맞추며 특급 조력자 역할을 해냈다. 이날 18번홀 네 번째 샷을 앞두고 ‘항상 연습하던 거니까 믿고 편하게 하라’는 존스의 말에 박성현의 하얘졌던 머릿속은 자신감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어머니 이금자씨 얘기가 나오자 박성현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엄마는 (국내에서) 제가 우승할 때 앞에 나서지 않는 분인데 이번에는 ‘잘했다’며 안아주셨다. 그때 우승이 실감이 났다”고 했다. 지금은 매니저가 있지만 국내 투어 시절에는 어머니 이씨가 딸의 매니저이자 운전기사 노릇을 도맡았다. 이씨는 그동안 “아이가 골프선수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골프 시킨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종종 했다.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제가 더 잘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박성현은 이날 엄마를 꼭 끌어안으며 “항상 고맙고 더 잘할게요”라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