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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톡] ‘무한도전’다운 웃음은 무엇인가…‘진짜 사나이’로 엿본 초심

‘무한도전’을 가장 ‘무한도전’ 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진짜 사나이’ 특집이 어렵고도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남겼다. 그리고 그 해답은 10여 년 전 초심과도 긴밀하게 닿아있다.

지난 22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진짜 사나이’ 마지막 이야기가 펼쳐졌다. 구멍 분대장으로 가장 큰 활약을 보인 박명수를 비롯해 유재석, 정준하, 하하, 양세형은 제30기계화보병사단에서 무사히 퇴소식을 치렀다. 배정남은 먼저 계획된 화보 촬영 일정으로 인해 조기 퇴소했다.




/사진=MBC ‘무한도전’/사진=MBC ‘무한도전’


‘진짜 사나이’는 지난 1일부터 방송된 특집이다. 배우 김수현과 ‘찾아라 맛있는 밥차’ 특집을 마무리한 후 방송 후반부에 짧게 맛을 보였다. 시작부터 레전드 웃음의 탄생이 예고됐다. 제작진은 멤버들에게 여름 바캉스를 떠난다고 속였다. 가이드 상시 대기, 삼시세끼 식사 제공, 6인 특실 스위트룸 등 김태호 PD 특유의 사기꾼(?) 기획력이 빛을 발했다.

왜 이제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진짜 사나이’는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특화된 특집이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한때 ‘무한도전’은 ‘평균 이하’를 자처하며 치열하되 어설픈 자학개그를 즐겨했다. 한껏 망가지고 경쟁하면서도 은근히 드러나는 팀워크는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모한 도전’부터 이어 온 특징이었다. 어찌 보면, 진정한 초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언제부턴가 ‘평균 이하’를 벗어났다. ‘무한도전’ 외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방송인으로서 성공했고 사회경제적인 지위도 더욱 높아졌다. 멤버들을 이끌어가는 유재석은 지식이나 상식, 체력 등에서 월등한 수준을 자랑했다. 더 이상 억지스러운 자학개그는 통하지 않게 됐다. 시청자들도 현실과 방송 콘셉트의 괴리를 느낀 것이다.

그러나 ‘진짜 사나이’는 달랐다. 방송을 위해 꾸며낼 필요가 없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오는 상황적 재미가 있었다. 멤버들 중 나이가 많은 편인 박명수에게 군대 훈련은 일부러 약한 척하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것이었다. 그의 ‘구멍 활약’을 지켜보는 멤버들에게는 웃으면 안 되는데 웃겨서 괴로운 상황이 주어졌고,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큰 웃음을 만들었다.

박명수는 입소 신고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훈련병 박명수 외 6인은 2017년 6월 21일부로 30사단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은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틀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박명수는 군대 경험이 전무 했다. 시력이 낮아 병역 면제(당시 제2국민역)를 받았다.

그런 박명수에게 가장 연장자라는 이유로 분대장 훈련병이라는 직책을 맡겼으니 군 생활이 순탄하게 이어질 리가 없었다. 흑곰 교관의 거친 카리스마, 불안한 눈빛의 박명수,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멤버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뻔히 예측가능하지는 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박명수의 활약은 일일이 꼽을 수가 없을 정도다. “필승 I Can Do”를 “필승 Yes I Can”라고 말하고, 얼차려를 하는데 침상 끝에 앉고, 덥다는 이유로 런닝을 챙겨 입지 않아 반나체로 뜀걸음을 하고, 전선을 전선줄이라고 말실수하고, 혼자서 도수체조 거울모드를 보여주고, 의류대를 옆 칸에 넣어두고 분실했다고 하는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도 여러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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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무한도전’/사진=MBC ‘무한도전’


그러나 박명수는 ‘구멍 분대장’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입소할 때와 다르게 퇴소할 때는 늠름함까지 느껴졌다. 마지막 날 아침 체력단련에서 열외 되는 훈련병들을 잠시 쳐다보기는 했으나 결국 끝까지 해냈다. 각개전투에서는 멤버들을 지휘했다. 어리둥절했던 입소식과, 예도문을 따라 귀가하던 퇴소식. 지난 3주간의 서사는 박명수로 인해 완벽한 기승전결을 가졌다.

박명수를 받쳐주는 멤버들의 역할도 작지 않았다. 사실 ‘무한도전’은 캐릭터의 예능이다. 10년이 넘는 동안 다양한 특집에서 각자 캐릭터를 구축했다. 심지어 정형돈은 안 웃기는 캐릭터까지 얻었다. 최근 빈번했던 멤버 탈퇴 교체로 자연스러운 캐릭터 설정이 이뤄지지 못했으나, 이번 특집에서 구멍 박명수를 비롯해 팅커벨 양세형, FM 유재석 등 캐릭터가 다시 살아났다.

넓은 연령층에 통하는 감동 코드 또한 있었다. 멤버들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훈련병들을 보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하하는 “건강히 무사히 제대하라”고 진심어린 멘트를 했다. 멤버들 서로간의 의리도 다시 확인했다. 고된 훈련 후 생수 한 병도 나눠 먹으려 했고, 화생방 훈련 때는 본인도 힘들면서 옆 사람의 정화통을 먼저 끼워줬다.

‘진짜 사나이’의 성과는 시청률에 곧바로 반영됐다. 후반부에 조금 등장했던 1일에는 11.7%(닐슨코리아 전국가구 기준)를, 8일과 15일에는 각각 14.5%, 14.9%를 기록했다. 올해 방송분 중에서는 지난 1월 ‘너의 이름은’의 15.4% 다음으로 높았다. 지난 22일에는 12.1%로 하락했지만 이전 특집들과 비교하면 나쁘지 않은 수치다.

‘무한도전’을 ‘무한도전’답게 만드는 것은 많다. 몇 달 짜리 초대형 프로젝트, 특급 게스트의 출연은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국내 예능 중에 이만큼 브랜드화 됐으며 막강한 영향력과 든든한 팬층을 가진 프로그램이 또 없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큰 규모의 특집들을 성공시키면서 몸집을 불려왔다.

그러나 모든 특집의 기본이 되는 것은 결국 멤버들의 합이다. 각각 나름의 개성을 가진 캐릭터를 꾸준히 만들어내며 프로그램을 성장시켜왔다. 이를 위해 제작진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황적 재미다. 김태호 PD가 바캉스라고 속여 멤버들을 군대에 데려간 것처럼 말이다. 뒤통수는 치되,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 수준의 판을 벌이는 것이 중요하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고 온 ‘무한도전’ 멤버들이다. 고생한 만큼의 결실을 얻은 것 같아 다행이다. 매 회 웃음을 빵빵 터트린 것은 물론, 시청자들이 진정 원하는 ‘무한도전’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확인하게 됐으니 말이다. ‘진짜 사나이’ 말미, 박명수가 “다음엔 해군 가야지”라고 무심코 흘린 멘트를 기억한다. 제작진 또한 염두에 두고 있으리라 기대한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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