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공간의 불평등, 난개발

송영규 탐사기획팀 선임기자

도시 발전하며 낙후산업 공장들

환경 유해 우려 외곽으로 밀려나

비도심이 피해·고통 모두 떠안아

지역 주민·경제 상생의 길 찾아야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한껏 들뜬 몸과 마음으로 자동차나 열차에 몸을 싣고 떠나 보자. 이제 대도시를 막 벗어났다. 무엇이 보일까. 시원하게 펼쳐진 논? 신록이 우거진 산?


눈을 좀 더 들어 멀리 보자. 길을 벗어나 동네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전혀 다른 풍경이 들어온다.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들어선 파란색 지붕의 회색 건물. 공장들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공장들 한가운데 갇힌 가정집도 볼 수 있다. 공장들이 밀집해 있으니 공단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대부분 공장주들이 자신의 돈으로 지은 건물들이니.

혹자는 말한다. 공장이 저토록 많으니 주변 동네에서는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겠다고.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을 테니 지역 경제가 크게 좋아졌을 것이라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얼마 전 취재차 서울 근교의 한 동네를 찾아가 70대 할머니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매몰찬 한마디와 함께 등을 돌렸다. “그냥 가세요. 할 말 없어요.” 찬바람만 쌩쌩 부는 분위기에 괜히 발걸음이 무색해진다. 문전박대.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취재.” 할머니의 남편은 공장에서 내뿜는 분진 등 환경오염물질 탓에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시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할머니의 목소리에 좌절과 분노가 담겨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할머니뿐 아니었다. 컨테이너 보관업을 하는 50대 사업가는 난개발 얘기를 꺼내자마자 욕부터 했다. 기업들이 쏟아내는 오염물질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누구 하나 손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썩어빠졌다느니,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뇌물을 먹고 인허가를 내줬다느니, 검찰과 판사 등 사법부도 기업만 편든다느니…. 그에게 해당 지자체는 또 대한민국은 불신의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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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도시가 확장하거나 신도시가 만들어지면 공장 설립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다. 그 과정에서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 기업 등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은 구로디지털단지의 공장형 아파트로 들어가거나 판교·광교 테크노밸리의 최첨단 사옥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모두 아파트형 공장이나 테크노밸리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물이나 가구·화학 등 경쟁력 없고 환경유해 우려가 있는 공장들은 도시 외곽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다. 도시는 더욱 빛나고 화려해지는 만큼 외곽은 낙후하고 볼품없는 존재로 추락한다. 그럼에도 그로 인한 모든 피해는 오롯이 그들만의 몫이다.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이들이 사는 도시 외곽의 비도심을 ‘공간의 비정규직’이라고 평했다. 지역 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주민은 환경오염의 위험에 노출되는 곳, 젊은이는 떠나가고 노인들만 남은 곳, 동네는 망가지는데 정작 누구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철저히 외면받는 곳이라는 뜻일 터다. 공장들이 난개발된 도시 외곽지역을 이보다 적절하게 나타낸 표현이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비정규직의 희생이 있었다. 전체 근로자의 3분의1에 달하는 비정규직이 대신 고용불안을 떠안고 협력업체 비정규직이 대기업 근로자의 3분의1에 불과한 임금으로 노동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입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년간 대도시 외곽 비도심 지역 주민들은 삶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대도시가 필요 없다고 뱉어낸 수많은 것들을 끊임없이 받아냈다. 덕분에 도시민들이 쇼핑몰의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활보하고 있다. 그 탓에 지역 주민들은 하루하루 공해와 소음에 시름시름 앓아간다.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이 계속돼야 할까. 할머니의 절규와 50대 사업가의 분노는 어디까지 이어져야 할까. 상생이 필요한 곳은 노사관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도시에 사는 주민도 도시민과 같이 대한민국 국민이다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skong@sedaily.com

송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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