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자영업 롱런시대, 이제는 상인정신이다] PC방 10년새 반토막...비자발적 '유행성 창업'이 생존율 낮춘다

<상>그 많던 PC방은 어디로 갔을까

신규 창업, 실업률에 비례

실업의 대안적 성격 짙어

개인사업자 창업준비기간도

6개월 미만이 60.9% 달해

퇴로 없는 창업, 폐업률 높아

한국경제 잠재적 뇌관으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 프랜차이즈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들을 둘러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취업난과 명예퇴직 등에 따라 자영업 창업으로 떠밀리고 있지만 3년 안에 70%가량이 폐업하는 실정이다.  /서울경제DB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 프랜차이즈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들을 둘러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취업난과 명예퇴직 등에 따라 자영업 창업으로 떠밀리고 있지만 3년 안에 70%가량이 폐업하는 실정이다. /서울경제DB


#1. 증권사 직원으로 20년을 근무한 이재우(가명)씨는 6개월 전 대학가 앞에 프랜차이즈 돈가스 가게를 차렸다. 본인이 돈가스를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프랜차이즈 박람회에서 설명을 들어보니 창업과정은 간단했고 음식조리도 어렵지 않았다. 그는 권리금, 보증금, 인테리어 비용 등까지 총 3억원을 썼다. 개업 첫 달 이씨는 순이익 500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러다 2개월 전 가게 근처에 ‘돈부리’집과 샌드위치 가게가 연이어 문을 열었다. 한 달 만에 매출은 40% 이상 급전직하했다.

#2. 증권사 직원으로 20년을 근무한 장형덕(가명)씨. 정년은 5년 남았지만 임원승진은 어렵다고 판단한 장씨는 아내와 상의한 끝에 1년 후 명예퇴직을 신청하기로 결심했다. 인생 후반부를 위한 업종은 요식업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장씨는 주말을 활용해 일본식 요리아카데미를 수강하기로 했다. 6개월 수강료가 1,000만원에 육박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집 근처 골목길에 자신의 이름을 단 가게를 차릴 계획이다.


동일한 배경에서 시작된 창업 스토리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창업의 자발성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영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로 꼽히는 것이 생존율인데 이 수치는 창업의 자발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자영업자 중 개인사업자의 폐업률(2014년 말 현재)은 13.6%로 법인사업자의 7.4%보다 두 배가량 높다. 통상적으로 법인사업자는 개인사업자에 비해 창업 준비기간이 길고 위기 대처능력이 뛰어나다. 지난 2013년 실시됐던 전국소상공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개인사업자 중 창업준비기간이 6개월 미만인 경우는 60.9%에 달했다.



국내 자영업 창업이 실업에 따른 대안적 성격이 짙다는 점도 창업의 비자발성을 드러내는 예다. 실제로 국내 자영업 신규창업은 실업률에 비례한다. 가장 최근 경제위기가 몰아닥쳤던 2008년 전후로 김자영씨와 성별·연령대가 비슷한 50대 중년남성의 실업률은 2.5%에서 2.9%로 뛰어올랐다. 이에 비례해 같은 기간 신규 개인사업자는 2008년 101만명, 2009년 96만명, 2010년 99만명으로 2000년대 초반 대비 크게 증가했다.

2010년 이후부터는 창업형태에 다소 변화가 생겨났다. 창업연령의 범위가 청년층과 노령층으로 확대된 것이다.

문성만 전북대 교수가 발표한 ‘1인 청년가구의 소득과 소비’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7.4% 수준이었던 남성 청년가구 중 자영업 종사자 비율은 10년이 지난 2016년 말 현재 12.2%로 크게 늘었다. 또 지난해 말 현재 60대 이상 자영업자는 149만명으로 1년 사이 3.2% 증가했다.



서경란 IBK경제연구소 팀장은 “창업연령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취업실패에 따른 청년창업, 소득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령창업 등이 추가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며 “그러나 이들 모두 ‘떠밀려 한 창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국내 자영업 시장의 후진성으로 꼽히는 창업의 비자발성이 여기에 숨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창업에서 자발성이 거세된 결과가 유행성 창업이다. ‘뜬다 하면 불나방처럼’ 창업수요가 밀집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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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돌려보면 국내 자영업 시장은 구간마다 유행하는 창업형태가 뚜렷했다. 1990년대 말부터는 PC방 사업이 크게 유행했는데 아이폰 등장으로 모바일 시장이 확대되자 PC방 사업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2만935개였던 컴퓨터게임방 운영업체는 2015년 말 1만650개로 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했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커피숍과 치킨집·편의점 등이 자영업을 선도하고 있다. 2006년 9,847개였던 편의점 숫자는 2015년 말 현재 3만1,203개로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비알콜음료점(2만6,452개→5만9,656개), 치킨전문점(2만2,968개→3만2,600개)도 크게 늘었다. 이들 3개 업종이 자영업 시장의 거시적 유행을 선도하는 사이 호두과자 전문점, 인형뽑기방, 대왕카스테라 등 미시적 유행업종은 곧 사그라졌거나 소멸위기에 처해 있다.

이 같은 자영업 시장의 특성과 과거사례를 비춰볼 때 앞으로의 자영업 역시 비슷한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실직에 따른 대안적 창업, 여기서 비롯된 유행성 창업이 계속되는 한 자영업자의 낮은 생존율은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자영업 외 생계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 시장으로 유입되는 인력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 팀장은 “비자발적 자영업 창업은 고용의 질이 매우 낮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며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의 높은 폐업률은 우리 경제의 잠재적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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