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공개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실적은 어닝쇼크로 나타났다. 지난 2006년 지주회사 출범 후 분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의 역신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여파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큰 폭으로 줄었다. 특히 상반기 기준으로 매출의 25%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하는 면세점 매출 급락이 직격탄이었다. 상반기 아모레퍼시픽그룹 주요 계열사의 영업이익이 마이너스 성장이다. 특히 면세점 영업에서는 화장품의 비중이 큰 탓에 LG생활건강이 25% 줄어든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2·3분기 44%나 급감했다.
참으로 우울한 성적표인데 증권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뜻밖의 평가가 나왔다. ‘서경배호’가 원래 가던 방향으로 순항하고 있다는 것.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3~4월 수차례 사내 전략회의에서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타협은 없다. 불가피한 외교 리스크에 대해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부분은 포기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에도 우리는 브랜드력과 해외 지역 확장에 더욱 매진하자”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 회장은 또 “면세점 채널이 외교적 문제와 직결되는데다 당초 비전에서 면세점 의존도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면세점 매출 급락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실적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최악의 환경에서도 ‘아모레호’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쟁사가 면세점에서 구매 제한을 풀어 적극적인 매출 방어라는 ‘타협’을 하는 동안 아모레는 중국 현지 및 온라인상에서의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기존의 1인당 구매 제한 개수를 그대로 유지했다. 3·4월 중국 현지에서 악화된 아모레의 실적은 4월 말부터 개선되더니 5·6월 두 자릿수 성장세로 올라섰다. 중국 내 디지털 채널의 매출은 40% 성장했다. 외교 문제로 인한 면세점 실적 악화와 달리 실제 브랜드력을 체감할 수 있는 중국 현지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회복한 것이다.
아시아권 매출 역시 중국과 홍콩 시장 때문에 적자로 보이지만 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 등 여타 아시아에서는 고성장을 달렸다. 이니스프리도 얼핏 적자로 보이지만 하반기 미국 세포라 입점을 위한 투자비와 고정비가 들어가는 탓에 숫자만 빨간불이다.
지금까지로 보면 숫자는 무늬에 불과해 보인다. 서 회장은 직원들에게 “올 3·4분기에도 한바탕 찬바람이 불겠지만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기다림을 강조했다고 한다. 하반기부터는 에뛰드가 중동에서, 이니스프리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영업을 한다. 글로벌 ‘톱10’을 향한 ‘명품전략’은 ‘사드’라는 암초를 만났지만 터널의 끝은 얼마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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