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분기 반도체 수출물량 지수는 393.97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7년 새 4배로 ‘점프’했는데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해 11월부터 증가로 돌아섰고 제조업의 설비투자·생산지표 역시 좋아졌다. 기나긴 경기둔화에서 벗어났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반도체가 몰고 온 착시다. 반도체 호황의 그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반도체발 산업 호황에 취해 제조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 소홀로 이어졌고 급기야 2·4분기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불황으로 놀고 있는 공장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 2·4분기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1.6%로 전 분기 72.8%보다 1.2%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4분기(66.5%) 이후 가장 낮다. 그해 제조업 가동률은 2·4분기 74.0%로 회복됐고 2011년 3·4분기에는 80.9%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후로 한 번도 80%대를 기록하지 못했으며 이제는 70%선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연간으로 봐도 2011년 80.5%를 기록한 후 2012년 78.5%, 2013년 76.5%, 2014년 76.1%, 2015년 74.5%, 2016년 72.6% 등 내리막길이다.
제조업 가동률 감소는 산업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는데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개선은 더디다는 의미다. 업계 경기 부진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반도체 산업의 대호황 등으로 우리 경제 전반이 호조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제조업은 소리 없이 곪아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월 발표한 ‘최근 설비투자 추이 분석 : 제조업 가동률을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반도체, 전자 부품 등을 제외한 업종의 가동률 하락 속도가 빨라 좀비 기업도 늘고 있다”며 “경쟁력이 약화된 업종의 구조조정이 계속 미뤄질 경우 설비투자 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지난달 광공업 80개 업종 가운데 전달보다 생산이 감소한 곳은 50개에 이르렀다. 전체의 62.5%에 이른다. 최근 3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한 곳도 26개나 된다. 자동차 부품, 구조용 금속제품, 시멘트·석회·플라스터 등이다. 이외에 섬유제품, 통신 및 방송 장비 제조업, 기타 비금속 광물제품 제조업 등도 생산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업종으로 꼽힌다. 광공업 업종의 전반적인 생산 증감을 보여주는 ‘생산누적확산지수’도 2014년 이후 내림세에 있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등 일부 경쟁력 있는 업종과 그렇지 않은 업종 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면서 “제조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경기가 이미 어려운데 반도체 효과로 가려져 있다”며 “반도체마저 꺼지면 상당한 어려움이 우려되는 만큼 글로벌 대표기업을 만들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