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친 돈은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서 모두 잃었습니다.”
지난해 10월 가벼운 사기죄로 구속된 피의자를 조사하던 부산지검 소속 한 검사는 피의자 진술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1조3,000억원대 기업형 불법 온라인도박 사이트에 대한 수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해당 도박 사이트가 상당한 규모라는 것을 직감한 검찰은 부장검사를 주임검사로 지정하고 검사 3명을 수사팀에 편성해 집중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 수사 특성상 내부 제보자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현금 인출책이나 전달책뿐 아니라 운영자까지 특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대부분 불법 도박 사이트들은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수시로 사이트를 없앴다 새로 만들기를 반복하면서 추적을 피하고 있다.
수사 의뢰를 받은 대검찰청 사이버수사과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사의 단초가 된 사이트는 이미 오래전에 폐쇄된 상태였다. 순간 담당 수사관의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떼인 피해자들끼리 도박 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른바 ‘먹튀’ 도박 사이트를 감별해주는 검증 사이트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보통 이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불법 도박 사이트 주소와 충전계좌, 고객센터 전화번호 등이 올라오곤 한다. 수사관은 먹튀 검증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을 하나씩 분석하다 폐쇄된 사이트와 같은 이름의 도박 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이어 변경된 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담은 게시글도 찾아냈다. 사이버수사과는 이를 기반으로 도메인(URL) 및 아이피(IP) 주소와 함께 맥어드레스 분석을 통해 연관되거나 유사한 1,000여개의 사이트를 찾아냈다. 1,000여개의 사이트에 일일이 들어가 확인한 결과 수사를 받던 조직이 운영해온 도메인은 다르지만 접속하면 같은 사이트로 들어갈 수 있는 일명 ‘대리점’이라 불리는 85개 사이트를 특정할 수 있었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사이트의 자금관리자, 대포계좌 공급책, 현금 인출책 등 11명을 구속 기소했다. 체포 후 범행을 부인하던 이들은 사이버수사과가 분석 보고서와 채증된 화면 등을 제시하자 결국 기소 전에 모두 자백했다.
사이버수사과의 객관적 증거에 베팅 금액 1조3,000억원, 회원 4만3,000여명으로부터 인출한 불법 수익금만 1,021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 기업형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의 불법행위는 막을 내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