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정부 믿고 발주했는데...첫 스텝부터 꼬인 '해운·조선 재건 약속'

정부 24억弗 선박펀드 조성한다더니 10개월째 지지부진

첫 프로젝트 현대상선-대우조선 VLCC 본계약 무산 위기

업계 "선가 바닥 지금 적기인데...골든타임 놓칠라" 발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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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다.”


‘한진 파산 사태’로 정신이 번쩍 들었어야 할 정부의 조선·해운업 지원이 첫걸음부터 꼬이고 있다. 한진해운 파산 사태와 글로벌 조선 경기 침체로 위기에 빠진 조선·해운을 재건하겠다며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24억달러 규모 선박펀드 조성’ 약속이 10개월째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이 정부의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선박펀드)’을 활용해 초대형 유조선(VLCC) 10척을 건조하려던 계획도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허겁지겁 내놓은 지원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조선·해운업이 재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구조조정 대상 업종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31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대우조선해양과 지난 4월 맺은 VLCC 10척(옵션 포함)에 대한 건조의향서(LOI)의 효력이 이날로 끝났다. LOI는 선주사와 조선사가 발주 전 체결하는 일종의 양해각서(MOU) 성격으로 몇 달 후 본계약으로 이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현대상선과 대우조선은 7월 말까지 본계약을 체결하고 조만간 본격적인 선박 건조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LOI 만기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 재입찰 수순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본계약이 미뤄진 표면적 이유는 현대상선이 대우조선에 지급해야 할 선박 건조 대금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현대상선은 정부가 조성한 선박펀드를 활용해 발주 대금을 지급할 계획이었다. VLCC를 발주할 때까지만 해도 정부의 선박펀드 조성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판단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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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박펀드 조성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현대상선의 신조 VLCC 건조 계획도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1~2년 뒤면 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판단하고 그즈음 신조 선박을 운항에 투입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발주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난감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 관계자는 “선박펀드 조성과 관련한 실무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어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가능한 한 빨리 자금이 지원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선박펀드를 활용한 첫 프로젝트부터 휘청이자 정부의 조선·해운업계 지원 의지를 의심하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선박펀드 조성은 정부의 조선·해운업 지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총 6조5,000억원을 지원해 ‘세계 5위 해운 강국’을 만들겠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컸지만 정부는 “해운 강국으로 재도약시키는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장담했다.

현대상선은 이번 발주를 시작으로 덩치를 키우는 국제 해운사들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할 계획이었다. 선사들이 선가가 바닥을 찍은 지금을 기회로 잡고 최신 선박 건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VLCC 선종은 최근 선가가 바닥을 다지고 반등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선사들이 발주를 서두르는 대표적인 선종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발주해도 선박을 인도받는 것은 1~2년 뒤”라며 “국내 해운사를 살리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현대상선이 신규 선박을 마련하기 위해 선박펀드에 일찌감치 손을 벌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은 4월 대우조선과 VLCC LOI를 체결하며 “VLCC의 가격이 역대 최저점인 올해가 발주 최적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일감 절벽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정부 지원으로 수주 물량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던 국내 조선사들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올 들어 수주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수년간 워낙 실적이 없는 데 따른 기저효과 측면이 크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최종 계약이 맺어지기를 바라지만 결국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해결되는 문제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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