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창간기획] IB 성패, 정책 아닌 사람에 달려...합당한 보상시스템 만들어야

<특별 인터뷰>랠프 슐로스타인 에버코어 CEO

IB 성패, 정책 아닌 사람에 달려...합당한 보상시스템 만들어야

'하만 인수' 주선 성공 비결은 '삼성과 오랜 신뢰 관계 구축'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 해외투자 때도 적극 참여할 것

금리·물가 상승률 낮은 수준...美 주가 고평가 상태 아니다

사모펀드 투자 유망·경기회복세 유럽기업 주식도 관심둘만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오디오 기업 하만을 80억달러에 전격 인수한다고 발표하자 국내 투자은행(IB)들은 물론 월가도 딜 성사 배경을 놓고 술렁였다. 향후 전자와 자동차 산업의 판을 흔들 수 있는 대형 인수합병(M&A)을 국경을 넘어 성사시킨 주역은 랠프 슐로스타인 에버코어(Evercore) 사장 겸 최고경영자(President & CEO). 뉴욕 맨해튼 월가에서는 지금까지 2조달러의 딜을 성사시킨 M&A의 대통령으로 통한다.

뉴욕의 에버코어 본사에서 만난 슐로스타인 CEO는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를 주선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5~6년 이상에 걸쳐 삼성 측과 깊고 오래된 신뢰 관계를 쌓았기 때문”이라며 지속적인 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IB 육성 정책에 대해서도 “IB의 성패는 정책이 아니라 사람에 달려 있다”며 “인재를 키우고 합당한 보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증시의 흐름과 앞으로의 투자 전략에 대한 조언도 제시했다. 슐로스타인 CEO는 “저금리 시대에는 “투자 수익성을 능동적으로 높일 수 있는 사모펀드(PEF)를 찾아 돈을 맡기는 것이 유리하다”면서 “경제가 서서히 회복되며 성장하고 있는 유럽 기업들의 주식도 추천할 만하다”고 말했다.

-1995년에 에버코어가 설립된 후 2조달러에 이르는 기업 M&A 딜을 성사시켰다. 월가에서 M&A 최고 강자로 올라선 비결이 궁금하다.

△M&A를 주선할 때 자문사로서 우리 능력을 냉정히 따진다. 가장 우선하는 것이 고객(인수나 매각 측 기업)과 관계 구축이 잘돼 있느냐다. 그러면서 그 회사에 딜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에버코어가 진행하는 M&A에 전문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딜 주선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좋은 성과를 내는 동력이 됐다. M&A를 추진하는 기업을 잘 모르는데 딜이 크다고 무작정 뛰어들지 않는다.

-기업 경영에서 M&A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M&A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데 M&A의 가치를 어디에 둬야 할까.

△기업이 M&A를 할 때는 ‘동기(motivation)’를 명확히 해야 한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건지, 제품을 추가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기업 전략의 변화를 추구한다거나 새로운 투자를 하려는 것인지 목표를 분명히 해야 성공 확률이 높다. 그런 뒤에 인수 대상의 가격이 적정한지 따져보고 회사의 가치를 늘릴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M&A 성공의 키는 ‘통합(integration)’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인수 후 통합 작업을 잘할 수 있는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기업 인수나 합병에 나서는 CEO에게 조언하는 얘기가 있는가.

△통합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기업 인수 초기에 해당 업체의 임원들을 대거 바꾸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는 중요하지만 먼저 인수 기업을 잘 알아야 변화를 잘 이끌 수 있다. 새 경영진이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인수 기업에 정통하지 않다면 기존 경영진 중 적임자를 찾아 변화와 안정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또한 M&A는 투자자나 주주들에게 주는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 기업 인수를 발표할 때 시장 반응을 보면 이 M&A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다. 딜을 공개하기 전에 주가 영향 등 시장이 호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에버코어는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세계적 음향기기 업체인 하만을 80억달러에 인수하는 데 자문을 하면서 명성을 알렸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 딜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우리가 딜에 참여하는 원칙이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에도 적용된다. 회사 내 임원들이 삼성전자 임원들과 깊고 오래된 관계를 구축하고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수 자문에 참여하게 됐다. 나도 삼성 수뇌부를 만나 딜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를 잘 끝냈지만 상호 보안 유지(confidential contract)에 대한 책임이 있는 만큼 더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없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랠프 슐로스타인 에버코어 최고경영자랠프 슐로스타인 에버코어 최고경영자


-한국 등 아시아 시장에 대한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것인가.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 기회를 찾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국민연금(NPS) 등 거대 자본을 보유한 기관투자가들이 있어 M&A 투자 등에서 협력할 기회도 많이 있다고 본다. 한국 기업들이 삼성전자처럼 역량을 더욱 높이기 위해 해외 투자를 모색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함께 일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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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서적으로 해외 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하는 데 경계감 혹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데.

△(웃으며) 외국 자본이 유입되고 기업을 인수하는 데 부정적인 반응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도 나오곤 한다. 내 생각은 해외 투자가들이 그런 반응들에 대비해서 준비를 잘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 대상국의 법규를 잘 알고 부정적 반응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M&A를 추진해야 한다.

-지난해 미국 대선 이후 뉴욕 증시가 급등하면서 증시에 고평가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현재 배당수익률은 5% 정도인데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은 2.3%에 머물러 있다. 기준금리가 1% 초반으로 낮은 편이고 물가 상승률도 2%에 못 미치는 낮은 수준이다. 이런 거시 경제 상황이라면 현 주가 수준이 고평가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지 않는 한 주가지수가 급락할 위험은 크지 않다고 본다.

-거시 경제적 측면에서 향후 미국이나 세계 경제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보는 것 같다.

△미국이나 세계 경제의 성장 속도가 천천히 가고 있고 점진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대를 유지하고 세계 성장률이 3% 중반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경제 상황을 나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연준이나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도 긍정적 부분이다. 최근에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지금 수준의 가치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저금리 시대가 계속되다 보니 유망한 투자처를 찾는 데 관심이 크다. 추천할 만한 투자 분야가 있나.

△자산가나 기관투자가라면 역량 있는 PEF를 찾아서 투자하는 것이 가장 좋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특정 이슈를 적극적이고 저돌적으로 PEF가 해결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모델은 투자수익뿐 아니라 기업이나 경제 전반에 좋은 에너지를 밀어 넣기 때문에 선순환 효과를 만들며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일반 투자자에게는 유럽의 우량 주식들을 권하고 싶다. 유럽 기업들은 미국보다 아직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은 편인데 유럽 경제가 최근 완만한 성장 궤도에 진입하면서 실적들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이 최근 정부 차원에서 IB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IB 분야 발전을 위해 어떤 정책이나 전략을 실행하면 도움이 될까.

△정책을 물어봤지만 IB는 사람이 전부다. 에버코어가 설립된 지 22년이 됐지만 역사가 더 길고 덩치가 큰 씨티나 도이체방크·UBS·바클레이스 등 선진국의 대형 IB보다 M&A 자문 등에서 더 큰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들보다 뛰어난 인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인재들이 IB 업계에서 일할 수 있게 하고 그들에게 성과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면 자연스럽게 IB 산업은 활발해질 것이다.

-향후 글로벌 M&A 시장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기업 M&A는 경제의 투명성이 높을 때, 경기의 예측 가능성이 개선될 때 활성화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야 CEO도 자신감을 갖고 도전적인 작업에 나설 수 있다. 하반기에도 금리 수준은 낮게 유지될 것이고 경기는 완만하게 상승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다. 시장 외부 환경이 명료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M&A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사례는 증가할 것으로 본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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