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카카오톡 등 모바일메신저로 밤새 수다를 떨다 잠이 드는 세대. 애인과 스마트폰 중 하나를 고르라면 스마트폰을 택할 정도로 ‘관계’보다 ‘개인’이 중요한 세대. 이처럼 스마트폰은 열정·젊음·희망 등 수많은 단어가 어울리는 청년의 일상과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요지경인 셈이다.
서울경제신문이 2017년 오늘을 사는 청년들을 스마트폰으로 만났다. 취업준비생과 공무원·신입사원·대학생 등 그들이 속한 집단은 달랐지만 그들의 스마트폰에서는 ‘청춘에 대한 설렘’보다 ‘삶에 대한 피로’가 짙게 묻어났다. 또 사회에 대한 관심,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불안한 미래, 개인의 일상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20~30년 전에 태어나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이끌어나가야 할 청춘들이 기성세대, 우리 사회를 향해 “피곤하고 힘드니까 혼자 있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기자들이 만난 청춘들은 흔들리고 아팠다.
취업준비생 박정우(28·가명)씨의 스마트폰. 그 속에는 ‘취업에 대한 불안과 고민’만이 가득했다. 스마트폰 즐겨찾기의 대부분은 ‘취업 사이트 채용공고’. 그곳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낸다. 박씨는 “취업 외에 인생에 대한 별다른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며 “스마트폰도 취업 관련 단톡방·정보 등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9급 공무원 안정민(24·가명)씨의 스마트폰에는 ‘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잔뜩 묻어 있다. 안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만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친구들보다 사회생활이 빨랐다. 친구들한테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푸념이라도 할라치면 “배부른 소리 하지도 말라”는 핀잔만 돌아온다. 그러다 보니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는 손가락으로 꼽힌다. 안씨는 “‘내 삶도 피곤한데 왜 남의 삶에 관심을 두냐’는 생각에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잘 안 하게 된다”며 “이것저것 챙겨줘야 하는 애인보다는 스마트폰이 더 좋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6개월 전 정보기술(IT) 기업에 입사한 이수연(25·가명)씨에게 스마트폰은 ‘스트레스’로 통한다. 스마트폰이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직장 상사가 보내는 카톡 메시지. 업무지시 카톡 알림음에 깜짝깜짝 놀란다. 그래서 퇴근만 하면 알림음을 끄고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이씨는 “입사 전에는 스마트폰으로 취업 관련 사이트를 많이 봤다”며 “그러나 이제는 알람을 끄고 게임을 하는 데 스마트폰을 애용한다”고 피식 웃었다.
대학생 김소영(21·가명)씨에게 스마트폰은 ‘취업을 위한 정보의 화수분’이다. 취업 스터디그룹 대화방에서는 수십 건의 메시지가 계속 올라온다. 각종 동아리, 소모임 대화방 등에도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사람들이 많다. 김씨는 “스마트폰에는 대기업의 인턴 관련 페이지가 즐겨찾기로 돼 있고 종종 선배들에게 전화해 진로상담도 한다”며 “주위에서 ‘3학년이면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 아니냐’고 하지만 현실을 잘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청춘들의 삶은 스마트폰 속이 아닌 통계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취업에 대한 고민, 대인관계에 대한 피로감, 정치적 무관심이 숫자로 나타난다.
본지가 LG계열 광고회사인 HS애드에 의뢰해 최근 1년간 ‘청년’ 관련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부정적 단어가 크게 늘었다. 5년 전 조사에서는 청년과 관련해 긍정적 검색어 비중이 절반을 넘는 55%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부정적 연관어가 크게 늘면서 긍정적 검색어의 비중이 절반 이하인 49%로 나타났다. 특히 일자리(4위), 돈(5위), 힘들다(6위), 취업(10위)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정혜주 HS애드 데이터마케팅플래닝팀 차장은 “청년들의 노곤한 삶을 대변해주듯 ‘돈·힘들다’ 같은 연관어들이 상위에 올랐다”며 “실업에 대한 정부 정책과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문재인·일자리’와 관련한 연관어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정치적 의견은 사라지고 생각이 있어도 표현하는 것을 꺼리는 흐름이 뚜렷했다. 본지가 SK텔레콤 캠퍼스리포터를 통해 전국 20대 남녀 17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아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촛불집회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는 비율도 61%를 차지했다.
또 청년들이 온라인에서는 관계를 이어가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만남을 꺼리는 양상도 눈에 띈다. 하루에 모바일메신저나 SNS를 사용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1시간에서 3시간 사이가 전체의 절반가량인 45%, 3시간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도 26%로 많았다. 반면 일주일 동안 별도로 시간을 내 만나는 사람이 3명 이하라고 답한 비율은 절반이나 됐고 오프라인에서 소모임 등의 활동을 한 달간 한 번도 하지 않거나 한 번만 참여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절반에 달했다. SK텔레콤 캠퍼스리포터 관계자는 “이번 설문 결과는 관태기(관계와 권태기를 합친 신조어)를 겪는 청년층이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방법은 많아졌지만 맺어진 인간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더 힘들어한다”고 설명했다. /양철민·양사록·지민구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