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시장이 계속 줄어들길래 해외영업에 공을 들여 간신히 수출 비중을 늘렸더니…. 최저임금이 이렇게 뛸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인건비 때문에 제품 가격이 높아지면 동남아 등 다른 나라들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습니다. 수출 못해요.” (김종웅 대은산업 대표)
지난달 31일 서울경제신문이 찾은 인천 남동공단과 서부지역산단,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은 다수 기업이 여름휴가에 돌입하면서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날 아침 장대비까지 쏟아지면서 공단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월말을 맞아 각종 정산 등 마감작업을 하는지 드문드문 불 켜진 사무실들이 눈에 띄었다.
시화공단에 있는 포장용 밴드 제작업체 대은산업 역시 생산직은 모두 휴가를 갔고 김종웅 대표를 비롯한 몇몇 사무직원들만 출근해 서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취재진을 맞은 김 대표의 눈에는 살짝 경계심도 묻어났지만 최근 최저임금 인상 등 회사 관련 이슈에 대해 맺힌 게 많았는지 회의실에 일단 자리를 잡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그의 가장 큰 불만은 이번 최저임금 인상폭(16.4%)이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한계범위를 넘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그냥 기업 망하라는 소리”라며 “매일 인근 기업인들과 대책회의를 하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대은산업의 매출액은 250억원가량. 영업이익률은 3~4%로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긴다. 근로자 75명 가운데 외국인 10명과 내국인 근로자 일부가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다.
수년간 최저임금이 6~7%씩 오를 때마다 대은산업은 마른 수건 쥐어짜듯 비용을 어떻게든 줄이는 식으로 간신히 대응해왔다. 지난 3월 자동화 설비를 늘리고 주말근무를 없앤 것도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특근수당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었다. 그런데 이번 인상폭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특히 수출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내수부진의 돌파구로 해외 거래처를 늘려놓았는데 인건비가 오르면 애써 뚫은 수출선을 다른 나라에 빼앗길 수 있다는 것. 그는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둔 거래처 대표가 말하기를 캄보디아 출신 근로자 7명 중 5명이 임금을 많이 주는 한국에 온다며 회사를 그만뒀다고 한다”며 “외국인도 똑같이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버틸 만한 중소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 서부지역산단에서 만난 서우란 서광금속 대표 역시 최저임금 인상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서광금속은 선철과 고철을 녹여 주물을 만든 뒤 중소업체에 공급한다.
서 대표는 “비용의 35% 정도가 인건비로 들어가는데 오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 현실화하면 우리 직원 월급은 다 최저임금에 못 미칠 것”이라며 “사실상 회사를 운영할 수 없게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최저임금 폭등이 회사 시스템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임금과 원재료·가격 등 여러 변수가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데 임금만 확 올라간 상황”이라며 “공급처에서 구매가격을 올려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일 아랫단의 임금이 올라가면 근속연수가 길고 직급이 높은 직원들도 조금씩은 더 올려줘야 한다”며 “직급 간 임금격차가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상급 직원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유독 최저임금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근로시간 단축 역시 사용자에게는 부담스럽겠지만 아직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이승휘 인천경총 전무는 “최근 인천지역의 경기는 상승세였는데 최저임금 이슈가 터지면서 기업들이 무척 곤란해하고 있다”며 “이익을 겨우 내는 기업들 사이에서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들려온다”고 전했다. 그는 “최저임금에 대한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이슈들은 생각도 못한다”고 말을 이었다.
홍병진 중소기업진흥공단 경기서부지부장은 “시화·반월공단의 경우 20년 전에는 업체가 4,000여개 있었는데 최근 1만개로 늘었다”며 “부지를 잘게 쪼개 영세업체가 늘면서 최저임금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단 입주사들이 대부분 하청을 받는 구조라 마진율이 낮은 것도 최저임금에 목을 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분기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71.6%로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점도 영세사업장들이 상대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둔감한 원인으로 꼽힌다. 대은산업과 서광금속 모두 주말에는 공장을 돌리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지금 내리는 비라면 인력난은 북상 중인 강력한 태풍 같았다. 취재진이 방문한 공장들은 하나같이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청년 실업률은 고공행진 중이지만 공단 기업들은 애타게 청년 근로자를 찾고 있었다.
김 대표는 “젊은 직원이 들어와 일도 배워야 회사가 계속될 수 있는데 좀처럼 구하기 어렵다”며 “어차피 실업난 해소에 쓸 정부 자금이라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것도 대안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서 대표는 “우리 평균 나이가 56세인데 외국인을 빼면 58세”라며 “젊은이들은 죄다 공무원시험 준비하러 가지 않았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극심한 임금 격차가 이렇게 (일자리 미스매치를) 만들었다”며 “최저임금 인상 같은 표면상의 문제만 볼 게 아니라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인천·시흥=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