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착한 경제 vs 나쁜 경제

정상범 논설위원

새 정부 ‘선한 정책’ 쏟아내지만

편 가르기·이권추구 등 후유증도

생산성 뒷받침돼야 ‘진짜 성장’

정부와 시장 공동주연 맡아야

ㅅㅈ




착한 기업이 화두다. 착한 기업의 매출이 치솟고 착한 일자리, 착한 성장과 같은 이른바 ‘착한’ 경제정책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에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재편이 핵심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창업·중소기업 위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이 공동 출자하는 협업전문회사제도를 도입해 규모의 경제력을 갖춰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낯선 정책구상도 등장했다. 마치 자본주의 속성을 파헤친 ‘좋은 자본주의, 나쁜 자본주의(Good Capitalism, Bad Capitalism)’에서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제시됐던 소규모 혁신적 기업들이 활동하는 기업가 자본주의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 경제학자인 윌리엄 보몰은 이 책에서 자본주의와 나쁜 자본주의를 가르는 기준을 ‘지속 성장’에 두면서 생산성 향상이 수반되는 성장이야말로 진짜 성장이라고 적시했다. 성장에 목말라하는 우리로서는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새 정부는 과거 성장 위주의 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사람 중심의 경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공정한 분배구조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기존 방식이 안 통하니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깔려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1만원까지 올리고 근로시간을 대폭 줄이고 정규직을 늘리는 새 정부의 ‘착한’ 정책들이 이러한 지향성 속에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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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자본주의란 양보다 질을 따지게 마련이다. 수치에 매달리는 단순한 성장보다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고 사회 빈곤층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따뜻한 통합의 경제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새 정부의 정책이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이 자칫 편 가르기의 폐단을 낳고 지속 가능한 진짜 성장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새로운 부가가치와 이윤을 창출하고 생산적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권만 추구하는 비생산적 활동을 부추기는 나쁜 자본주의의 함정은 곳곳에 널려 있다. 집권 초기부터 개혁작업에 속도를 내다보니 나쁜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는 나쁜 재벌이 우리 경제의 최대 문제라는 분위기마저 조성되고 있다. 착한 기업을 지목하면서 다른 기업을 나쁜 기업으로 몰아붙이거나 부동산 시장에는 나쁜 투기꾼들로 득실거린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시장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평등이나 분배의 문제를 마치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아 발생한 것처럼 몰아간다면 포퓰리즘의 우를 범하기 쉽다.

일자리든 성장이든 결국 기업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가야 가능한 법이다. 그러자면 정부가 원톱으로 뛰는 게 아니라 정부와 시장이 공동 주연을 맡아 보다 실용적인 접근에 나서야 한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보몰 교수가 기업가 자본주의를 이상형으로 내세우면서도 대기업의 혁신을 촉진함으로써 ‘대기업 자본주의’와 혼합된 체제가 지향해야 할 자본주의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새 정부의 국정목표인 착한 일자리를 만드는 길은 창업과 혁신이다. 그러자면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의 원칙을 세우고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일본항공(JAL)을 부활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처음 회사를 찾았을 때 직원들은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급여 인상과 같은 선의를 베풀기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을 선택했다. 그는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고 했다. 일시적 고통을 회피하려다 파산(대악)에 내몰리지 말고 비정하더라도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를 살리는 ‘대선’을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는 ‘작은 선’이 아니라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시대의 지도자라면 한 번쯤 곱씹어 볼 얘기다. /ssang@sedaily.com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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