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은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 재판 피고인 신문에서 대통령 독대 당시 삼성의 현안은 거론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지난 2015년 7월25일 독대에서 삼성에서 추진하던 현안을 말씀드린 것은 없었다고 기억한다”고 답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같은 문화체육재단에 대한 얘기도 없었다고 그는 단언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건강상태나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상황을 거론하며 감사를 표했고 삼성물산이 참여한 카자흐스탄 화력발전소 사업에 대해서도 소상히 말해 깜짝 놀랐다”고만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삼성이 “승마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이 부회장에게 역정을 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15일 독대에서 “대통령이 종합편성채널 JTBC에 대해 심하게 짜증을 내 뭔가 부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 8월 무렵까지 최씨와 정씨의 존재는 물론 삼성이 정씨의 승마를 후원한 사실도 전혀 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그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삼성 계열사가 204억원을 출연하고 장시호씨가 운영하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전자가 약 16억원을 후원한 일도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후 “언론 보도로 알았다”고 선을 그었다. 최 전 부회장도 이날 오전 피고인 신문에서 “정씨 승마 지원이나 재단 출연 등에 대해 이 부회장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공소사실을 부인하기에 앞서 최 전 부회장은 특검의 전제를 흔들었다. 그는 “삼성그룹은 법적 실체가 없어 그룹 회장은 그냥 대주주, 지배지분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일 뿐”이라며 “삼성물산 합병이나 금융지주사 전환 같은 현안하고 승계를 연결하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 전 부회장은 “이 부회장은 다른 과정이나 요건 없이 사장단회의에서 추대하면 내일이라도 회장이 될 수 있지만 본인이 부담을 느껴 미뤘다”고 증언했다.
이 회장의 와병 중에 경영을 총괄했던 최 전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지시한 것은 올림픽 승마 지원이었고 최씨 딸 정씨는 없었다”며 “최씨가 뒤에서 장난을 쳐 (승마 지원 명단에 정씨를 포함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를 이 부회장에게 전하는 게 적절한가 생각하고 정씨 얘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이 부회장에게 보고해 그가 ‘그런 일을 해도 되겠느냐’고 하면서 스톱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후회도 해본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미전실장으로 재직한 기간(2012~2017년)에는 주요 의사결정을 제 책임하에서 했고 다만 이 부회장이 의전적으로 회사를 대표하고 있고 좋은 뜻에서 총수라고 하니 밖에서 (최고의사권자라는)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부회장에게 보고했는지를 수 차례 묻는 검사에게 “제가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관계는 (회사를) 관둘 때까지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역시 “최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등 넷이 모여 회의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그룹 현안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종혁·노현섭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