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하늘의 별따기’ 된 초등교사 임용..근시안적 행정·어설픈 교육자치가 사태 키웠다

4일 서울 종로구 서울교육청 앞에서 서울교대 등 서울 지역 교육대생들이 2018학년도 초등교사 선발 인원 대폭 축소에 항의하고 있다/연합뉴스4일 서울 종로구 서울교육청 앞에서 서울교대 등 서울 지역 교육대생들이 2018학년도 초등교사 선발 인원 대폭 축소에 항의하고 있다/연합뉴스


전국 공립 초등교사 선발 예정 인원이 급감하는 ‘임용 절벽’이 현실화되자 교육당국의 원칙 없는 교원 수급 정책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선발인원 감소의 직접적 피해자인 교육대학 학생과 교원단체는 물론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정치권에서는 교원 임용절벽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 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사태가 발생한 배경을

◇임용 준비생·교총 “정부가 책임져야” =서울교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4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학년도 초등교사 선발 예정 인원을 전년도의 12% 수준으로 줄인 것은 비상식적 처사”라며 “졸업생만큼의 선발 인원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올해 초등교사 선발 예정 인원은 3,321명으로 지난해 5,549명보다 2,228명(40%) 줄었다. 특히 교대생들이 선호하는 서울은 지난해 846명에서 올해 105명으로 8분의 1수준으로 급감했고, 세종시도 269명에서 30명으로 줄었다. 경기도는 선발예정인원이 1,712명의 절반인 868명에 그쳤고, 광주광역시는 지난해 20명에서 올해 5명으로 줄었다. 부산, 인천, 경남, 제주 등도 선발 인원이 감소했다. 선발 인원이 증가 내지 유지된 곳은 전남, 강원, 울산에 불과하다. 비대위는 “105명은 지난해보다 무려 690명 감축된 인원인데다 서울교대 졸업 예정자 수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며 “서울교대는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국가가 설립한 대학인데 졸업생의 절반도 초등교원이 될 수 없는 것은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선발 인원이 한자릿수로 줄어든 광주의 교대생들도 비상이 걸렸다. 박정은 광주교대 총학생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개선하고, 이를 위해 초등교원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번 초등교사 선발 예정 인원수를 보면 현 정부가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의지를 갖췄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필환 광주교대 학생지원처장은 “그동안 일반 국민은 교대만 가면 임용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갈수록 정원이 줄어 충격적이고 착잡하다”고 했다.

교원단체들도 교원 수급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요구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김재철 대변인은 “선발인원 감소가 필요하다면 6∼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학생 수가 줄더라도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교사는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국 주도권을 빼앗긴 야당도 오랜만의 호재(?)를 만난 듯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신규 임용 대기자가 수천명에 달하는데도, 정부는 원칙 없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임용 대기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고용 정책을 겨냥했다. 이어 “항간에는 대통령의 공약을 무리하게 달성하기 위해 신규 임용 교사 수까지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고 공격했다.

국민의 당은 이번 임용절벽 사태를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 정책과 연결지어 비판했다.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초등학교 교사 일자리 절벽은 정부가 수요 예측에 실패한 탓”이라며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공무원 증원은 장기 수급계획에 따라 수요를 예측해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5년간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채용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며 “그러나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로 삼겠다면서 미리 공무원을 많이 뽑아놓으면 다음 세대에 피해를 주고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실업인 듯 실업 아닌 실업’ 4,000명 육박하는 임용 대기자=사상 최악의 임용절벽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간단하다. 학생 수가 감소하는 데도 불구하고 최근 수년간 교원을 과도하게 선발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올해 정권이 바뀌자 폭발해버린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등교사 임용 대기자는 3,817명에 달한다.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997명, 927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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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부가 정하는 초등교사 정원은 매년 감소해왔다. 교육부와 행정안정부 등 관계기관이 교사 1인당 학생수에 따라 교사 정원을 정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15만595명이었던 초등교사 정원은 올해 14만8,245명으로 2,350명 줄었다. 정원을 줄인 만큼 교사선발 수를 줄이지 않아 임용대기자가 폭증한 것이다. 임용대기자들은 자리가 생길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며 실업자 아닌 실업자로 지내야 하며 3년안에 임용되지 못하면 합격이 취소된다.

학생수와 교사 수를 비교하면 정책 실패가 한층 명확히 드러난다. 전국 초등학교 학생수는 지난 2010년 329만9,000여명에서 지난해 267만2,800여명으로 19%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교사 수는 17만6,700여명에서 18만3,400여명으로 늘었다. 교육부 정원(14만8,000여명)과 실제 교사수(18만3,000여명)의 차는 교육당국의 교사 수급 정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교육부·교육청 “네 탓 공방”...민낯 드러난 교육자치=임용절벽 사태는 ‘권한분산’이 ‘무책임’과 직결될 수 있다는 상식과도 맞아 떨어진다. 처음 임용절벽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책임을 고스란이 17개 시도교육청으로 돌렸다. 특히 서울의 ‘임용절벽’에 대해 “정원은 지난해보다 292명 줄였는데, 시교육청이 선발 인원을 700명 넘게 줄였다”며 책임을 시교육청에 떠넘겼다. 정원은 교육부가 행정안정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결정하지만, 실제 선발인원은 각 시교육청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만큼 최종 책임은 교육청에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시교육청은 “교육부가 정원을 정하면 퇴직예정자, 복직자, 임용대기자 등을 고려해 선발 인원을 결정한다”면서 “교육부가 정원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임용대기자가 3년이 넘도록 임용되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선발 인원을 대폭 줄일 수 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임용대기자는 3년안에 임용되지 못하면 합격이 취소된다. “교육부에 정원 증원 내지 유지를 요구했으나, 교육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시교육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교사 정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교사선발 수를 유지해달라는 교육부의 무리한 요구를 별다른 반발 없이 수용해 결과적으로 임용절벽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도 “선발 인원을 유지하라는 교육부의 무리한 요구를 차단하지 못한 것을 시인한다”며 책임을 일정부분 인정했다. 교사 선발을 늘리거나 유지할 때는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암묵적으로 협조하고는 선발을 줄일 때는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교사 ‘정원’은 중앙정부, 교사 ‘선발’은 시도교육청이 맡는 어설픈 지방자치가 ‘표’에 도움이 되는 선발자 증가 내지 유지 때는 ‘야합’을, 인기 없는 정원 축소에는 ‘책임 떠넘기기’라는 도덕적 해이를 야기한 셈이다.

◇‘교원 증원’+‘1수업 2교사제’ 문재인 정부 공약도 무시= 교육부 관계자는 “서울시 초등고사 정원을 줄이면서 공무원 증원과 1수업 2교사제 등 문재인 정부의 공약 사항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수업 2교사제는 아직 추진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고, 교원 증원도 예산당국과 협의가 되지 안았다는 이유에서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추가경정예산에도 중등교원 정원 470명 증원만 반영됐을뿐 초등 교원 정원은 동결됐다.

오히려 교육부는 계획과 행동이 정반대였다. 교육부는 지난 5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서 ‘1수업 2교사’제를 차질없이 시행하고 초등교원 수를 2020년까지 6,300여명 늘리겠다고 보고했다. 결국 자신들이 작성한 업무보고 내용조차 전혀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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