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아무리 뜨거운 남녀의 사랑도 휴머니즘이 담겨야 아름답죠"

'바람으로 그린 그림' 낸 소설가 김홍신

가톨릭 신부 되려던 남자와

상처 안은 여인의 사랑 담아

소설 쓰다 처음으로 울어봐

통일에 관한 작품 준비중

사랑 소설도 계속 써야죠

김홍신 작가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람으로 그린 그림’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김홍신 작가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람으로 그린 그림’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김홍신(70) 작가의 집필실 책상 머리맡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바람은 그물에도 걸리지 않지만 추억과 상처를 끌어안은 영원한 사랑의 그물에는 자유로운 바람조차 걸릴 수밖에 없다.”


메모가 말해주듯 국내 최초 밀리언셀러 ‘인간시장’ 등 주로 굵직한 사회 비판적 소설을 썼던 김홍신 작가가 요즘 천착하는 주제는 ‘사랑’. 2015년 발표한 ‘단 한 번의 사랑’ 이후 2년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역시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바람으로 그린 그림’이다.

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해독제가 없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남녀간의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한 관계도 결국 휴머니즘으로 발전해야 아름다움이 지속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담아 원고지를 닦달하며 썼다”고 소개했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은 사랑의 상처가 깊게 남은 여인과 가톨릭 신부가 되려던 삶의 진로를 그 여인으로 인해 바꾼 남자의 운명적 사랑이야기다. 소설은 두 주인공을 1인칭 시점의 화자로 번갈아 등장시키며 이들의 감정 변화를 면밀하게 비춘다.


대표작 ‘인간시장’의 존재감이 워낙 큰 탓인지, 김홍신이 쓴 ‘사랑 이야기’는 낯설다. 그가 사랑 이야기에 빠져든 이유는 뭘까. 그는 그 이유로 40년을 줄곧 썼지만 글쓰기가 점점 더 겁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가 의원직에서 물러난 뒤 총 10권에 달하는 역사서 ‘대발해’를 집필했다. 당시 그는 ‘대발해’ 탈고 후 정신적인 고통이 극심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 작가는 “당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공부에 정진하다가 내면의 이야기를 다룬 수필집을 냈고 이후엔 사랑이야기를 소설 소재로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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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은 자전은 아니지만 작가의 어린 시절을 기본 재료로 한다. 소설 속 남자주인공 리노처럼 김 작가의 세례명은 리노고, 그 역시 어린 시절 신부가 되기를 꿈꿨으며 어머니의 반대로 신학대학 대신 의대에 입학하기로 마음 먹었으나 낙방했다. 그러나 운명적 사랑의 상대인 7살 연상의 여인 모니카의 존재와 소설 속 일화들은 모두 작가의 상상이다. 처음엔 오해를 살까 싶어 다른 이름을 쓰려 했지만 ‘리노’라는 자신의 세례명을 쓰고 나니 거짓말처럼 글이 나아갔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원고지에 만년필을 꾹꾹 눌러 글을 쓴다. 이번 소설의 분량은 1만2,000장. 탈고까지 1년이 훌쩍 넘게 걸렸다. 소설을 쓰며 눈물을 훔쳤던 일화도 소개했다. “소설을 쓰며 울어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그 막바지 상황,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 한달간 같은 방에 지내면서도 참아내는 애절함 같은 것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 사랑은 100도가 되기도 하고 1,000도가 돼서 무엇이든 녹일 수도 있지만 실제 사랑의 온도는 36.5도로 돌아가게 돼 있다는 걸 실감했죠.”

당초 김 작가는 등단 40주년을 맞은 지난해 이 소설을 출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에 올 초에는 탄핵정국이 이어지면서 출간 시점을 미루게 됐다. 그는 “지난 2년간 세상사가 소설보다 100배 재미있었던 까닭에 출간 시기를 놓쳤다”고 농을 했다. 그는 또 “평생을 블랙리스트로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도청을 당했고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문제로 떠들썩 할 때 내게 전화해 ‘블랙리스트는 자기가 만들지 않았으니 믿어달라’고 하기에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훗날 박영수 특검에서 밝히기를 내가 ‘단 한 번의 사랑’에서 독립운동가를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배고픔에 시달리고 친일파 후손은 배가 부르다고 표현한 대목이 있는데 이 때문에 블랙리스트가 됐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째서 친일파를 비판하면 블랙리스트가 되는 걸까요. 우리 시대가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탓이겠죠.”

작가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충북 논산에서 착공한 집필관이 올 연말 완공되고, 내년 말에는 문학관도 개관을 앞두고 있다. 그는 “죽는 날까지 글을 쓰고 제자들 바라지를 하라는 하늘의 명령이 아닐까 한다”며 소감을 대신했다. 여전히 글쓰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소설과 시, 에세이에 중국고전 평역서까지 합해 130여권을 책을 집필했고 현재도 통일을 다룬 소설을 집필 중이다. “남과 북이 합일할 수 있는 통일에 관한 소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에 관한 소설을 계속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은 우리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평생 숙제로 남을 테니까요.”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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