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임직원 먹먹해 한 '40년 삼성맨' 최지성의 후회

[이재용 결심공판서 최후진술]

글로벌 기업 성장 기여했는데

재판정 서게된 부끄러움 피력

완벽주의가 사태 원인 지적도

결심공판 출석하는 최지성 전 부회장. /연합뉴스결심공판 출석하는 최지성 전 부회장.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박영수 특검에 의해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평소 자신의 핵심 역할 범위를 계열사 간 사업을 물밑에서 조율하고 총수인 이건희 삼성 회장을 보좌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을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는데도 본인이 대외적으로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결심 공판이 열렸던 지난 7일. 자신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한 특검과 자신의 운명을 쥐고 있는 재판부 앞에 선 최 전 부회장의 최후 진술이 삼성 임직원들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기술과 자본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한순간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정에 선 부끄러움으로 변한 데 대한 솔직한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다.


최 전 부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후진국인 한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겠냐는 선진국 경쟁사의 비아냥 속에서 삼성 반도체가 1위로 우뚝 서는 데 일조했다”고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그는 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본 소니를 꺾고 세계 1등이 됐고 휴대폰 사업을 맡아서는 넘볼 수 없다고 여겼던 노키아를 꺾어 세계 1등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 “삼성이 인텔을 꺾고 세계 최고 제조업체가 됐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달 7일은 제가 삼성에 입사한 지 40년 되는 날”이었다면서 “새벽 2시 반까지 재판이 이어진 그날 내내 후회와 반성, 뭔지 모를 서글픔으로 가슴이 먹먹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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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해외 고객사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차를 몰고 돌아다녀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최 전 부회장의 절절한 진술이었기에 회한은 더욱 컸다. 문과(서울대 무역학과) 출신임에도 전문 용어로 가득한 1,000페이지에 달하는 반도체 기술교재를 통째로 외워 1985년 독일 발령 첫해 100만달러 판매에 성공한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2006년에는 와인 잔을 본 딴 ‘보르도TV’를 앞세워 글로벌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앞지르고 삼성전자를 1위에 올려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 전 부회장의 얘기여서 더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최 전 부회장을 조사한 특검의 한 검사조차도 그에게 “존경하는 최 부회장님을 여기서 봐 안타깝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 전 부회장의 완벽주의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다는 원망도 삼성 내부에서는 나온다. 그 역시 이번 일이 “내가 해야 한다는 독선, 법에 대한 무지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0년 삼성맨의 운명은 오는 25일 법정에서 가려지게 된다.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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