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기고] 냉방온도 28도, 인간을 버린 환경사랑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초 ‘2017년도 하절기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대책’을 시행하면서 공공기관의 실내온도를 냉방 설비 가동시 평균 28도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했다. 이는 비단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정책이다.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국가 시책에 대해 우리 국민은 힘들어도 잘 참아준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더 심해졌다. 냉방 설정온도가 26~28도였던 것이 28도 이상으로 상향조정된 것이다.


2015년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국가에서 권장하는 냉방 설정온도(26~28도)가 너무 덥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적정 냉방온도로 24도를 제시했다.

누구는 한산모시를 입으면 된다지만 그 온도에서 근무해본 필자의 경험으로 이는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요즘 사무실에는 개인별로 컴퓨터가 있다. 모니터를 2개씩 사용하기도 한다. 복사기·프린터도 있다. 이들이 열을 발산한다. 게다가 사무실은 칸막이로 막혀 더운 공기가 순환되지도 않는다. 이를 순환시키기 위해 작은 선풍기를 달면 열이 더 난다. 냉방 설정온도가 28도면 직장인이 자기 자리에서 느끼는 온도는 30도를 훨씬 넘어간다.

이 정도 온도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머리가 멍해지고 실수가 생긴다.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는다. 일을 하는 것인지 시체처럼 사무실에서 견디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일한 대가로 월급을 받기보다 고통을 감내한 대가로 월급을 받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멍하게 하루가 지나가는 것에 마치 내 인생이 낭비되는 느낌도 든다. 차라리 내가 개인적으로 전기 값을 부담하더라도 냉방기를 좀 가동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도 직장별로 총전력량을 관리하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는다.


사무실 한가운데 얼음을 사다 놓기도 하고 빙과를 사다 먹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이 냉방기를 가동하는 것보다 더 비싸다. 회의는 더운 사무실보다 시원한 호텔 등 정부의 냉방 제한을 받지 않는 곳으로 가서 한다. 이 또한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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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방기를 가동하고 효율적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도 이득일 것이다. 직장인의 급여가 얼마나 되는데 전기 값 좀 아껴보자고 근무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말인가.

내가 하루에 얼마를 벌고 내 삶을 위해 얼마를 쓰는데 전기 몇천 원어치 아끼자고 하루 종일 찜통인 직장에서 고통받아야 하는 것인가. 에너지 절약이 낭비를 줄이자는 것이지 필수적인 것을 쓰지 말자는 것인가.

절약을 한다면 삶에서 가장 낭비적인 것을 줄일 때 효과가 커지는 것이다. 자가용으로 출근하고 1만원대 이상의 점심을 먹는 사람이라면 자동차 비용과 식대를 줄여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절전이 국시도 아닌데 절약을 해도 할 만한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에너지가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절약은 미덕이지만 삶은 더 큰 미덕이어야 한다. ‘환경’은 ‘둘러칠 환(環)’에 ‘지경 경(境)’으로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영어 ‘environment’도 같은 뜻이다. 즉 내부에 주체가 있고 주체를 둘러싼 객체가 환경이다. 즉 내부 주체가 없는 환경은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환경을 사랑하다 보면 환경의 큰 적이 인류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버려서는 환경이 아니다. 물론 에너지 절약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을 제약하고 인생을 낭비하게 하면서 하는 에너지 절약은 환경 사랑이 아니다. 누구는 모시를 입으면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값싼 전기로 냉방을 할 것인가 비싼 모시를 입고 멍하게 있을 것인가.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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