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국정원 대공수사 폐지-찬성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한남용 방지...비밀정보기관 정상화해야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여권은 국정원의 정보수집 기능과 수사 기능을 분리해 민간인 불법사찰, 간첩조작, 공안몰이 등을 막고 국가 최고 정보수집기관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며 국정원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국정원 개악저지 전담팀 TF’까지 구성해 다음달 정기국회에서 입법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 폐지 찬성 측은 정보기구가 정보수집을 넘어 수사까지 하는 것이 정보활동의 비밀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며 수사권을 경찰·검찰에 넘겨야 권한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 측은 해외 정보기구와의 공조가 가능한 국정원만이 대공수사를 감당할 수 있으며 국정원이 맡아야 수사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적폐청산 작업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국정원 출신의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정보위원장은 대공수사권 폐지를 이적행위라고 단정했다. 국정원이 야생마처럼 범죄와 불법을 자행할 때 국회정보위는 도대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한다. 댓글 부대의 참상을 본 시민들에게 국정원은 국가안보를 위한 기구가 아니라 공공의 적에 불과했다.


물론 필자는 비밀스러운 국가활동을 이 세상에서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원리주의자가 아니다. 이해가 상충하는 개별국가들의 관계에서도 폭력적으로 국가를 전복하려는 내부의 극단주의자들을 겨냥해서도 정보활동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런데 블랙리스트 작성, 댓글 부대,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 유우성씨 간첩조작, 도청프로그램 구입 스캔들, 특정정치인 음해공작, 어버이 연합 게이트 등 국정원의 행적들이 모조리 들통나 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무능한 조직을 정보기구라고 부를지 의아하다. 필요하면 적을 생산하고 때로는 정치판에 직접적인 행위자로 뛰어드는 초법적인 헌법수호자라고 부를까. 이미 국제위기그룹(ICG)이라는 민간기구는 지난 2014년 보고서에서 정보활동 실패, 정보의 정치화, 국정원의 정치개입 등을 지적하며 국정원의 평판을 세계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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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당연하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 이외에 국정원이 할 수 있는 기능이 과연 있는지다. 그래도 간명한 원칙으로 돌아가자. 자주적이고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정보기구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주성은 초당파적이고 장기적인 국익의 우선성을 의미하고 민주성은 법과 국민대표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효율성은 민간기업이나 흥신소보다는 유효한 정보를 유능하게 수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정보기구는 비밀리에 이러한 일을 수행해야 한다. 만일 정보요원이 수사까지 한다면 비밀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정보기구들도 한국의 국정원처럼 수사를 벌이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의 지침도 정보기구는 정보활동에 전념하고 수사활동은 전통적인 법집행기구에 맡기라고 권고했다.

국정원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비정상적 조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비밀 정보활동을 위한 절제된 기구가 아니라 박정희 군사정권의 통치보조기구였다. 위세를 부리기 위해 탄생했기 때문에 수사권과 그 남용은 조직의 본질적인 수단이었다. 수사권 폐지론은 무소불위의 권세에 젖은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로 들리고 이적행위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수사권 존치론이야말로 수사권 행사와 국내 정치 개입을 통해 국정원이 지금까지 향유해온 정치적 존재감과 효능감, 그리고 막대한 예산을 이해타산적으로 반영할 뿐이다. 이제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익에 필수적인 안보정보·테러정보·산업정보의 수집에 전념하는 것이 국정원의 유일한 생존전략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가 국가안보에 공백을 초래한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현재도 경찰과 검찰이 모든 범죄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으며 이관되더라도 그 일을 더욱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 정보기구는 수집한 범죄정보를 수사기관에 제때 이첩하면 충분하다. 존치론자들은 정보수집활동을 해온 쪽에서 수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식이라면 아예 재판까지 하는 게 맞겠다. 그러나 정보기구의 수사활동은 비밀성을 잠식하고 권한집중은 권한남용의 위험을 배가시킬 뿐이다. 역사는 이 모든 것이 진실임을 증명해줬다.

물론 국정원을 해외정보원으로 개혁하고 국내보안정보원을 별도 설립하고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준하는 기구를 발족하는 것과 같은 큰 그림도 조만간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다. 어찌 됐던 국가정보원의 수사권 폐지는 국가정보원을 정보기구답게 만드는 첫 조치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도 시민의 자유보장과 민주정치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시도가 구제불능의 국정원을 회생시키고 국가권력을 재배치하는 것에 그친다면 개혁이 아니라 합리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무 찬양죄와 같은 구태를 여전히 범죄로 수사한다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기준에 미달하는 행위마저 처벌하는 국가라면 수사주체가 누구든 상관없이 공권력은 자유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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