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시민은 왜 거리로 나서는가

김민형 사회부 차장



“촛불집회가 끝난 후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오로지 사명감만으로 버티지만 참 힘드네요.”

종로경찰서에서 집회·시위 관리를 맡고 있는 한 경찰관의 하소연이다. 종로서는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동안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이어진 촛불집회를 관리했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가 ‘촛불집회 백서’를 만들어 집회 관리 표본으로 삼으라 할 정도로 성공적인 집회 관리였다.

광장의 시민들이 탄생시킨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광장은 여전히 붐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집회와 시위가 매일 1~2시간 간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인근도 지난 5월부터 매일 3~4건의 집회·시위가 열리고 있다. 오죽했으면 청운효자동 주민들이 소란스러워 못 살겠다면서 “시위를 자제해달라”고 침묵시위를 벌였을까.


경찰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촛불집회에 비해 집회·시위의 규모는 크게 줄었지만 건수가 훨씬 늘었다. 이런 상황이 지난해 10월부터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으니 제아무리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경찰이라도 혀를 내두를 만하다. 한 일선 경찰관은 “집회 관리 때문에 집에 못 가고 끼니도 거르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며 “다른 지역으로 전출을 요구하는 경찰도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 수뇌부도 일선 경찰들의 불만을 모를 리 없다. 김정훈 서울경찰청장이 최근 청운효자동 경찰관을 직접 찾아가 노고를 격려하고 표창장까지 주며 마음을 다독였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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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촛불집회라는 직접민주주의가 만들어 낸 놀라운 사건을 목격했다. 하지만 직접민주주의는 인류의 오래된 정치실험을 통해 한계를 드러낸 체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이 의회제도를 도입하고 국민이 뽑은 의원이 국민을 대리해 정치를 하도록 한 이유다.

그런데도 직접민주주의 열망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은 간접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하면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시민의 권리를 위임받아 시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시민의 요구를 담아내야 할 국회의원들이 보이지 않는다. 고작 한다는 말은 내년 지방선거 타령이다. 문제가 있는 곳에는 항상 대통령이 등장해 해결사 노릇을 하는 모습만 반복된다. 아무리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해도 이 정도면 ‘국회의원 실종 사건’이라 할 만하다.

시민은 일자리를 구하고, 돈을 벌고, 아이를 키우는 것만 해도 버겁다. 정치까지 하라고 하면 참 난감하다. 게다가 시민이 월급까지 주면서 정치하라고 뽑아 놓은 국회의원이 있지 않은가. 돈 받고 일하지 않으려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한다. 취업난 속에 그 일을 대신할 사람은 차고 넘친다.

kmh204@sedaily.com

김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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