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이 콧방귀를 뀌었지만 ‘미스틱 맥(Mystic Mac)’은 10라운드까지 버텼다. ‘세기의 졸전’ ‘비싸기만 한 서커스’라는 우려를 불식시킨 것은 코너 맥그리거(29·아일랜드)의 투혼이었다.
27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T-모바일 아레나에서 끝난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웰터급(69.85㎏) 프로복싱 대결. 맥그리거는 10라운드(전체 12라운드) TKO로 지고도 승자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40·미국)만큼 큰 박수를 받았다.
메이웨더는 49전49승의 무패 복서. 이날 승리로 그는 로키 마르시아노(49전49승)를 넘어 복싱 사상 최초로 50승 무패 기록을 썼다. 지난 2015년 9월 은퇴 후 50전50승 기록을 위해 다시 링에 선 메이웨더는 누구도 견주기 어려운 전설로 남게 됐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에야 프로복싱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딴 ‘복싱 초보’ 맥그리거에게 10라운드까지 허용했다는 자체로 경력에 흠집을 남기게 됐다.
‘치고 빠지기’의 최고수인 아웃복서 메이웨더는 불혹을 넘긴 탓인지 예전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맥그리거의 기량이 기대 이상이었던 것도 분명하다. 2년 전 메이웨더-매니 파키아오(필리핀) 간 세기의 대결은 부끄러운 졸전으로 남았지만 상대가 맥그리거로 바뀐 이번 대결은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종합격투기 21승(18KO)3패에 미국 종합격투기(UFC) 최초의 두 체급 석권 기록을 보유한 맥그리거는 UFC의 자존심을 드높였다.
1라운드부터 저돌적으로 주먹을 뻗은 맥그리거는 메이웨더가 가드를 풀지 않고 수비로 일관하자 뒷짐을 지고 도발하기도 했다. UFC는 5분씩 5라운드 경기다. 3분씩 12라운드의 복싱이 아무래도 버거운 맥그리거는 초반에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3라운드까지는 팽팽했다. 철저히 탐색전을 벌이던 메이웨더는 상대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4라운드부터 정타를 꽂아넣기 시작했다. 특유의 맷집으로 잘 버텨내던 맥그리거는 9라운드에 연타를 맞고 다리가 풀렸다. 결국 10라운드에 오른손 스트레이트 펀치를 얻어맞아 크게 휘청였고 가드를 올리지 못할 정도가 되자 1분50여초를 남기고 주심은 경기를 중단했다.
맥그리거는 “경기 내내 한 번도 다운된 적 없는데 ‘레프리 스톱(주심이 선수 부상을 우려해 경기를 중단시키는 것)’이 선언됐다. 아쉽다”면서 “펀치력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초반에는 분명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맥그리거는 한 번도 링에 눕지 않고 거의 30분을 버텨낸 셈이다. 그는 이어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다음 경기는 옥타곤(UFC)에서 치르겠다”고 했다.
맥그리거의 별명은 미스틱 맥이다. 도저히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실현해내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다. 앞서 2015년 맥그리거는 10년간 UFC 18승 무패를 달리던 조제 알도를 13초 만에 쓰러뜨렸다. 메이웨더와의 경기 전 “새로운 복싱의 신에게 기도할 준비나 하라”고 자신감을 보였던 맥그리거는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1라운드도 못 버틸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리면서 팬층을 더 넓히게 됐다. 그는 이 한판으로 UFC에서 받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1억달러를 챙기게 됐다.
2억달러를 손에 넣게 된 메이웨더는 “내 마지막 댄스 파트너 맥그리거와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며 “그는 강한 상대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았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