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무시무시한 상어떼가 있는 수조 속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귀여운 펭귄들을 안고 먹이 주는 이들이 등장하면 순식간에 유명 아이돌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아이들의 탄성이 쏟아진다. 아이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보다 한참 앞선 ‘대통령 할아비’라 불리는 이들, 바로 이색직업 아쿠아리스트다. 아직 대중에게는 생소한 직업이지만 미래 유망 직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수중생물 전문가’ 아쿠아리스트의 삶은 과연 어떨까. 올해로 16년째 활동 중인 아쿠아리스트 임지언씨를 만나 눈과 귀가 ‘쿨’해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저는 16년차 아쿠아리스트 임지언(41)입니다. 현재 한화 아쿠아플라넷 63에서 AQ소속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마음껏 키울 수가 없었죠. 그래서 동물을 키우는 친구 집으로 놀러 가서 돌보거나 몰래 학교에서 키웠어요. ‘어떻게 해야 동물이랑 계속 생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관련 학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평소 스킨스쿠버 등 수상 스포츠도 좋아해서 수산양식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할 때쯤 마침 국내에 대형 수족관이 많이 생기고 있던 터라 ‘이건 운명이다!’싶어 부산의 한 대형 수족관에 아쿠아리스트로 입사했어요.
사실 아쿠아리스트라는 말이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데요. 대형 수족관에서 수중생물을 사육·관리·연구하고 전시 등을 기획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수족관 관리자죠. 주로 수조에서 생물들과 생활하면서 수족관 환경과 수중생물의 건강을 살핍니다.
현재 한화 아쿠아 플라넷 63에는 수산질병 관리사가 상주하고 있어요. 2주마다 수의사가 방문 검진하고요. 하지만 간단한 응급처치는 담당 아쿠아리스트가 합니다.
‘나폴레옹 피쉬(Cheilinus undulates)’예요. 보통 애완 물고기의 평균 수명이 3~4년, 대형 물고기의 경우 10년 정도인데 이 물고기는 50년 이상 살아요. 길이만 해도 1m가 넘는 대형 물고기에 머리가 툭 튀어나오고 입술이 두툼해서 사람들은 대개 징그러워하죠. 물고기들이 대개 기억력이 안 좋은 편이어서 사육사를 못 알아보는데 항상 저를 알아보고 애교부리며 졸졸 따라 다녀서 더욱 애정을 쏟았어요.
인간관계에서도 서로를 파악하는데 일정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동물과도 적응 시간이 필요해요. 더군다나 수중생물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아쿠아리스트들이 생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서 파악해야 하거든요. 적어도 동물과 교감이 자유롭고 손발이 맞으려면 최소 3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우선 수산 양식학과나 생물학 관련 전공을 해야합니다. 반드시 다이빙과 수영을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수중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할줄 알면 좋겠죠. 이 밖에 양식기사, 어병(魚病)기사, 질병 관리사 등 해양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동물을 좋아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해요.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뿐더러 생명체를 다루는 업이기 때문에 다방면의 노하우를 요구하거든요.
지난 2012년 7월 아쿠아플라넷 제주에서 근무할 당시 멸종위기종인 고래상어 해랑이와 파랑이를 구조한 경험이 있어요. 정치망 그물에 걸려 한 어민의 신고 받았고 저희가 출동하게 됐죠. 지구상에서 가장 큰 어류이다보니 고래상어 2마리를 구조하는데 특수 운반 장비와 40여명의 직원이 동원됐어요. 당시 국내에서 최초로 고래 상어가 포획된 것이어서 더욱 뜻깊은 경험이었죠. 이후 제주 해양과학관에서 2개월간 함께 생활한 뒤 원래 살던 바다로 방사했어요.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한여름밤의 꿈처럼 기적같은 일이었어요.
아무래도 많은 종을 접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입사했을 당시 한창 아쿠아리움이 개장을 앞두고 있었던터라 단시간에 여러 개체들을 돌봤어요. 그래서 제가 전담하고 있는 생물이 아니어도 평소와 다른 이상행동이나 징후가 보이는 생물을 빨리 발견하는 편이죠. 어류의 경우 급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상 징후를 빨리 발견해야 생존확률이 높아지거든요.
국내에는 총 250여명 정도의 아쿠아리스트들이 있어요. 한화소속 아쿠아리움 4곳에는 112명이 있고요. 저희 63 AQ팀은 총 16명입니다. 점점 늘어나는 추세죠. 해외에서는 아쿠아리스트가 이색 전문직이다보니 연봉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보니 연봉도 기업 직급 체계에 맞춰져 있어요. 일반 대기업 직장인 연봉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입사 초기에 ‘기인’으로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었어요. 직업 인터뷰가 아니라 ‘이색 동물을 키우는 사람’으로요. 당시 잘 키우지 않는 독거미, 뱀, 이구아나, 지네 등 특이한 동물을 많이 키웠죠. 퇴근후에도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여전히 동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이에요. 24시간 동물과 함께하는 ‘동’물아일체 라이프 부럽지 않나요?(웃음)
흔히 아쿠아리스트는 다 외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아요. 쇼맨십을 요구하는 물범이나 돌고래 등을 전담하는 아쿠아리스트는 대부분 활동적인 성격이고요. 반면 산호초나 해파리 등 무척추 생물을 담당하는 아쿠아리스트들은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자신의 성격에 맞는 생물을 선호하고 전담하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아쿠아리스트들이 가장 관심있고 잘 돌볼 수 있는 생물을 전담하도록 하는데 대체적으로 호불호없이 다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수족관 상황에 따라 랜덤하게 정해지죠. 또 전담 생물이 정해지면 아쿠아리스트가 교체를 원하지 않는 이상 잘 안바꿉니다. 정 들면 생물도 사육사도 새로 적응해야 해서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릴 때부터 ‘새줍(새를 줍는다)’능력이 있어요. 날아가는 새를 어떻게 줍냐고요? 길을 가면 제 머리나 발 밑에 새가 막 떨어졌어요. 소위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제가 딱 그런 사람이었죠. 나중에 공부해서 알아보니 비밀을 알게 됐어요. 저에게 비범한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새가 떨어지는 시기를 경험적 타이밍에 맞춰서 지나갔던 거예요. 새들이 태어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소(離巢)’를 하는데요. 새가 자라면 어미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둥지에서 떠나는 거죠. 물론 새를 주우면 둥지를 찾아 주거나 다친 새는 치료해서 자연으로 방사했죠.
사람이든 동물이든 곁에서 ‘죽음’을 지켜볼 때 가장 힘들죠. 특히나 수중 생물들이 저희에겐 가족만큼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는 동반자인데 갑자기 사라지면 그 공허함과 상실감을 견뎌내기가 무척 힘들죠. 일명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반려동물이 죽은 뒤에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자주 겪으니 그게 가장 힘들어요. 특히 원인 불명으로 급사한 경우 연구목적으로 사체 해부를 해야 하는데 얼마 전까지 함께 지내던 친구의 배를 갈라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아무래도 요즘은 전문성을 살린 직업들이 각광 받는 것 같아요. 특히 해외에서는 아쿠아리스트가 정년이 없는 이색 전문직으로 불려 인기직종으로 꼽히죠. 은퇴해서도 경험적 노하우와 지식을 바탕으로 동물 전문 연구가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 유망 직종이라고 생각해요.
자연복원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 살충제 계란사태를 비롯해서 동물 및 자연 환경 이슈가 계속 발생하잖아요. 비록 수족관 생물들도 갇혀있지만 그 속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복지와 환경을 개선해주는 것이 제 업인 것 같아요. 그래서 틈틈이 수족관 환경과 자연 복원 관련해서 계속 공부하는 중입니다.
물 속에서 근무하면 체력소모가 굉장히 커요. 특히 다이빙을 자주 하니까 중이염이나 기관지 관련 질병에 취약하거든요. 그동안 수중생물들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제는 제 건강도 좀 챙기면서 함께 ‘윈·윈’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정가람기자·성윤지인턴기자 gara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