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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①] ‘품위녀’ 정상훈 “안재석, 독창적 캐릭터…힘들게 만들었다”

밉상도 이런 밉상이 없다. 아내와 딸을 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것도 모자라 어느 한 사람도 포기하고 싶지 않단다. 게다가 일 쪽으로는 능력도 없으면서 재벌 2세 노릇은 다 하고 다닌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그를 좋아했다. 신기한 일이다. 캐릭터 안재석의 힘을 넘어선, 배우 정상훈의 힘이었다.

정상훈은 최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카페에서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극본 백미경, 연출 김윤철) 종영 인터뷰를 가졌다. ‘품위있는 그녀’는 요동치는 욕망의 군상들 가운데 마주한 두 여인의 엇갈린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정상훈은 극 중 우아진(김희선 분)의 남편이자 윤성희(이태임 분)와 불륜에 빠지는 재벌 2세 안재석 역을 맡았다.




배우 정상훈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로마의 휴일’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지수진 기자배우 정상훈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로마의 휴일’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지수진 기자


‘품위있는 그녀’는 앞서 JTBC 드라마 최고 시청률이었던 ‘힘쎈여자 도봉순’을 16회에서 제친 것도 모자라 마지막 회에서 최초로 12%대를 기록하며 새 역사를 썼다. 1회 2%대로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믿기지 않는 성장이다. 이에 대해 정상훈은 “시청률이 마치 제 인생처럼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고 말문을 열었다.

“추이를 보면서 기분이 좋았어요. 제가 많이 나오는 회에서 시청률이 쭉 올라가는 것을 보면 더 좋았죠.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네요. 사실 초반 1, 2부에 시청률이 잘 안 나와서 문 닫은 드라마도 많잖아요. 4, 5회에 더 괜찮은 연기가 나오니까 시청률이 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백미경 작가에게 첫 번째 공을 돌렸다. 대본의 유연함의 폭이 크다며 이만큼 큰 작가가 대한민국에 있을까 싶었단다. 보통 가족극이면 가족극, 장르물이면 장르물 등 잘하는 분야가 정해져 있는데 백 작가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고. 보조 작가도 없이 ‘도봉순’을 집필하면서 동시에 ‘품위녀’까지 썼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숨겨놓은 대본 아닌가 싶기도 했다.

“‘흥부’라는 영화 시나리오도 쓰셨는데, 천재적인 집필 솜씨는 어디까지인가 싶어요. 앞으로의 행보가 너무 기대가 돼요. 두 번째는 김윤철 감독님의 섬세한 연출이에요. 편집실에 놀러갔는데 음악 하나 때문에 고민하고 계시더라고요. 이태임 씨가 골뱅이 소면을 무쳐서 저에게 주는 건데 무칠 때 음악이 들어가나, 무치고 들어 올릴 때 들어 가나로 고민하시는 거예요.”

당시에는 그냥 지나가도 되지 않나 생각했지만 결국 이런 디테일로 인해 파스타를 집어던지는 장면들까지 우아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저는 줄을 잘 선 것”이라며 작가와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그러나 ‘품위있는 그녀’를 본 시청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안재석 캐릭터를 완성한 것은 정상훈이다. 그러기까지 본인의 노력도 상당했다.

“사실 안재석이라는 인물이 잘 안 잡혔어요. 원래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신을 고른 후 계속 리딩하고 증폭시키는 편이에요. 그런데 재벌 2세 중에 아는 인물이 없는 거예요. 주위에 제일 잘 사는 인물이 김생민 형, 신동엽 형 정도거든요.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재벌 2세는 거의 나쁜 역인 거예요. 제가 따라할 게 아니라서 정말 많이 고민했죠.”


그래서 다시 대본 분석에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안재석이 마주치는 인물마다 다르게 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와 있을 때는 엄마 치마폭에 쌓인 고등학생 같았고, 딸과 있을 때는 친구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 방이 있더란다. 내연녀와 있을 때 결단력이 보였다는 것이다. 너무 잘 살다 보니까 도덕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이해하니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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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상훈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로마의 휴일’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지수진 기자배우 정상훈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로마의 휴일’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지수진 기자


“여기에 정상훈의 모습을 집어넣자고 생각했어요. 저의 장기인 코미디요. 밉상 역할이라고 해서 많이 미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어요. 독창적인 캐릭터를 원하기도 했고요. 눈을 껌뻑할 때 느리게 하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얘가 지금 알아듣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어요. 절대 머리 굴리는 것은 아니고 눈만 껌뻑껌뻑. 안재석이라는 캐릭터, 참 힘들게 만들었죠.”

촬영장에서 캐릭터는 더욱 살아났다. 애드리브 덕분이었다. 원래 연출과 상의하는 게 맞지만 미리 애드리브라고 말하면 애드리브가 아니라고 생각한 정상훈은 그냥 했다. 김 연출이 걱정 말라고 했으니 믿고 했다. 상황을 상상해서 쓴 작가와 공간의 공기를 접하는 배우에게 나오는 심적인 에너지가 다르다고. 배우들끼리 만났을 때의 시너지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어휘를 선택했다.

“예를 들면 이기우에게 했던 ‘키다리 아저씨’같은 것들이죠. 조금 MSG를 넣고 싶었어요. 나중에 작가님께 혹시 결례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상훈아, 더 하지 그랬어. 나는 너무 좋았어. 내가 제일 사랑하는 캐릭터가 안재석이었어’라고 말씀을 해주시는 거예요. 역할을 제대로 표현해줘서 좋았다고 해주시니 저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노력들 덕분에 밉상임에도 마냥 밉지는 않은, 정상훈만의 독보적인 안재석이 완성됐다. 물론 촬영 전에는 걱정도 됐다. 사실 불륜남이라는 역할이 좋은 이미지는 아니지 않나. 이미 ‘칭타오’ 광고가 잘 돼서 다른 광고도 많이 찍고 있는데 혹시라도 떨어지게 되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코미디를 넣은 것이다. 웃겨드리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니까.

“아내 역인 김희선씨와 연기적으로 많이 통한 것도 다행이었죠. 저희는 진짜 NG없이 거의 한 번에 갔어요. 빠르게는 한 번에 10개 장면도 찍고 그랬어요. 제가 옷을 빨리 갈아입는 편인데 저보다 더 빨리 갈아입고 나오더라고요. 스태프들이 기다리는 걸 아니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잘해요. 감정신이 다양하니 예민할 수 있는데도 컨트롤을 잘해요. 많이 배웠죠.”

그러면서 처음 대본을 받았을 당시를 회상했다. 김 연출과 미팅하기 전에 대본을 먼저 받아서 봤는데 안재석이라는 이름이 우아진과 박복자 다음으로 세 번째에 있더라. 처음에는 ‘헷갈렸구나’싶었다고. 성형외과 의사인데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했단다. 게다가 상대배우가 김희선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더 의아했다.

“듣자마자 ‘그 분이? 나랑 왜?’라고 했어요. 사실 그 정도가 되면 작품에 입김이 작용할 수 있잖아요. 감독님께 잘못 생각한 거라고 할 수도 있고.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김희선 씨가 저를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기사를 통해 봤어요. 다음에 술 한 잔 먹으면서 대화하고 싶어요. 왜 추천했는지 물어보고, 당신의 촉이 맞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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