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여명] 잊혀져 가는 규제개혁위원회

이종배 생활산업부장

1998년부터 정부 입법 견제했지만

文정부 들어선 활동 파악도 어려워

유통법안 진흥은 없고 대부분 규제

규제개혁 심사 메커니즘 되찾아야





지난 1998년에 설립돼 현재도 대통령 직속으로 소속된 위원회가 있다. 바로 ‘규제개혁위원회’다. 설립 동기는 말 그대로 ‘규제개혁’이다. 1990년대 들어 과도한 정부 규제가 문제가 됐다. 시시콜콜 간섭하는 정부의 각종 규제가 시장 원리와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 이 같은 반성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위원회다.


설립 목적에 맞게 규개위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정부 입법은 행정예고, 규개위 심사,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 규개위 심사 과정에서 ‘과도한 규제’라며 제동이 걸린 사례가 수두룩하다. 한 예로 2015년 환경부가 빈 병 보증금 인상안을 제출하자 규개위가 태클을 건 것이 대표적이다. 인상안을 철회하고 취급 수수료를 업계에서 자율 결정하도록 권고하면서 빈 병 보증금 인상 시행 시기가 당초 계획보다 늦춰지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규개위가 흡연 경고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넣는 방안에 제동을 걸면서 논란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규개위의 심사 원칙은 ‘규제’라는 시각에서 본다는 점이다. 국민 건강과 관련된 법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 법안 심사 시 해당 조항이 철회나 삭제로 의견이 모이면 ‘개선 권고’를 주문한다. 일반적으로 ‘권고’는 구속력이 없는 의견일 뿐이다. 한데 규개위의 권고는 강제력이 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에 따라야 한다고 ‘행정규제기본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부 부처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규개위가 그 위에 군림했다.


전 정권하에서 규개위의 파워는 더 대단했다. ‘손톱 밑 가시’로 상징되는 규제개혁 정책을 펼쳐서다. 정부 부처는 규개위를 상대하기를 더더욱 꺼렸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규개위 심사를 피하려 국회의원을 통해 우회 입법하는 것이 빈번해졌고 이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규개위를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규개위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며 의원 입법으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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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 규개위의 모습은 어떨까. 규개위 역할에 대한 잘잘못 등 논란을 차치하고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규개위의 존재를 깜빡 잊은 사람도 있을 거 같다. 규개위 홈페이지(규제정보포털)만 봐도 그렇다. 과거 규개위 홈페이지에는 각 부처별 규제 법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총 규제가 몇 건이고 부처별로 몇 건인지가 수시로 업데이트됐다. 아무나 홈페이지만 접속하면 볼 수 있는 이 지표는 해당 부처의 규제개혁 ‘성적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홈페이지에는 이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규제 총량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자료를 요청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규개위 홈페이지를 보면 규개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면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한때 개혁의 대상이 됐던 규개위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새 정부 들어 ‘규제개혁’이라는 단어를 찾기 힘들어서다. 실제 골목상권 보호, 경제적 약자 보호 등을 내세우며 여러 규제 법안이 추진됐거나 대기 중이다. 유통만 놓고 봐도 그렇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법안을 보면 산업진흥은 찾아볼 수 없다. 거의 규제로 채워지고 있다. 출점 제한, 의무휴업 대상 확대, 영업시간 제한 등 소비자 편익보다는 소상공인과 골목상권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대 국회 들어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된 규제 법안만 1,300여건에 이를 정도다.

최근에야 정부가 신산업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규제개혁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하지만 큰 흐름의 정책 기조는 규제개혁이 아닌 규제 강화에 여전히 방점이 맞춰져 있다.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지만 한쪽에서는 이를 가로막는 각종 법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물론 규제 정책을 도입해 보호해야 할 산업과 대상은 있기 마련이다. 고려할 것은 한쪽을 보호하기 위해 내놓은 법안이 다른 편에서는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막강한 규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규제 법안을 만들 때는 다각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이 같은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예전만 못한 규개위의 위상이 이를 반영해주고 있다./ljb@sedaily.com

이종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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