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우리 곁의 잔혹동화

송영규 논설위원

허구의 동화보다 잔인했던

청소년 폭행사건 가해자들

강자 생존·물질 만능이 만든

'프랑켄슈타인'은 아닐는지





어릴 적 읽은 그림 형제의 동화는 언제나 ‘해피 엔딩’이었다. 계모의 학대를 받던 주인공은 잘생긴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고 숲속에서 길을 잃은 남매는 마녀를 없애고 집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재미있게 읽으며 동심을 키운 동화가 원래는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인공이 못생긴 여동생들의 눈알을 뽑고 계모가 아닌 친엄마가 학대를 했으며 근친상간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했다. 그림 형제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당시의 법과 질서 체계가 반영돼 떠돌던 구전을 글로 옮겨 놓은 데 불과하다. 동화의 잔혹함은 단지 그때의 현실이 반영됐을 뿐이다.

그래도 그림 형제의 동화가 비판을 받지 않는 것은 허구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온 국민을 경악시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사진 한 장.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은 보면 볼수록 소름이 끼친다. 속옷만 입은 채 피범벅이 된 소녀, 두들겨 맞고 짓밟혀 찢어진 머리,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은 얼굴…. 10대 중반의 소녀들이 저질렀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잔인하고 끔찍하다. 반성도 없고 죄의식도 없다.


한 번 터지자 무슨 호박 덩굴처럼 줄줄이 나온다. 강릉에서 아산에서 부천에서 서울에서…. 갈수록 흉악해지는 청소년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친다. 모든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법원이 ‘도주 우려가 있고 소년이지만 구속해야 할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며 이례적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소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청원도 이뤄지고 있다. 타당성 있는 주장이다. 어른도 기가 질릴 만큼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고도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죄를 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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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개정하고 처벌을 강화해 이 땅의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다. 과연 이런 해피 엔딩이 가능할까. ‘무서운 중학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냉혹한 생존 경쟁을 시작한다. 어린이집·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시작한 줄 서기는 초등학생 이후부터 학원으로 내달리는 경주로 바뀐다. 어떻게든 남보다 공부를 잘해야 하고 잘나기 위한 선택이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간다는 믿음을 심어준 것은 우리 사회다. 어디 아이들만 그럴까. 내 자식만 중요하고 남의 아이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부모 밑에서 극단적 이기주의는 내 아이들의 심성마저 바꿔버렸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 모든 것이 통한다. 남을 밟고 올라서도 성공만 한다면 모든 것이 용서되므로. 권력과 돈이 있다면 내 맘대로 해도 되고 죄도 덜 받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힘이 있으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터다. 이러니 발걸음을 떼면서부터 배운 생존 본능이 어디로 가겠는가. 해피 엔딩을 위해서는 잔혹해도 상관이 없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상황이 힘들다고 비명을 지른다. 살려달라고, 도움을 달라고 절박한 신호도 보낸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청소년의 10명 중 4명은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끼고 있다고 한다. 어린 나이임에도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출세를 바라는 부모도 부담스럽다.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고 답한 부모가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사회는 경쟁에서 이겨야 산다고 강요하고 부모는 자신의 꿈을 자식에게 투영하니 아이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지난 2015년 자살한 청소년은 708명이나 됐다. 또다시 잔혹한 현실이다.

청소년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돈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갑질을 하고 무조건 힘으로 상대를 꺾으려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나는 잘해야지’라고 생각할 턱이 없다. 잔혹한 현실 속의 여중생 가해자들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나.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skong@sedaily.com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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