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신창(사진) 중국철강협회 부회장이 서울 한복판에서 “앞으로 100년간은 중국이 글로벌 철강 산업을 주도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지난달 31일 서울 삼성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017 스틸코리아’ 포럼에 참석해 “철강 산업의 헤게모니가 유럽·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미 넘어왔다”며 “중국이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최대 소비국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어 향후 1세기간 철강 산업의 중심에 위치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포럼에 참석했던 권오준 포스코 회장,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등 국내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CEO) 면전에서 중국이 철강굴기(堀起)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여파로 반도체와 함께 한국 제조업의 한 축인 자동차 산업이 기울어져 가는 와중에 터진 발언이라 현장 분위기는 침울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중견 업체 관계자는 “국내 업계 대표들 앞에서 ‘눈치 잘 보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고 씁쓰레했다. 다른 관계자도 “중국이 공급 물량을 조절하면 동북아 3국의 철강 가격이 들썩거린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라며 “생산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패권 시대가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자조했다.
리 부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글로벌 철강 업체 순위(생산량 기준)에서도 그대로 입증된다. 중국 철강 업체 1위인 ‘보무강철’은 유럽의 아르셀로미탈에 이어 2위다. 10위권 안에도 하북강철(3위)·강소사강(6위)·안산강철(7위)·수도강철(9위) 등 4개사가 자리할 정도. 조강(쇳물) 생산량은 8억톤(2016년 기준)에 달해 우리(6,800만톤)의 12배 수준이다. 철강 생산량이 많은 만큼 이에 비례해 원자재 구매력도 강력해 중국 외풍이 심하다.
리 부회장은 중국 제품에 대한 각국의 무역규제도 ‘견제’라는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철강 산업이 사실상 무역보호를 통해 연명하고 있다”며 “미국의 반덤핑관세(AD) 발동은 자체 경쟁력 저하에 따른 자구책”이라고 규정했다. 앞서 미국은 중국산 철강 여파로 동종 업계 피해에 직면하자 중국 업체에 32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매기며 대응에 나선 바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중국의 과잉설비 해소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앞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5~2014년 글로벌 조강 생산량 증가분 5억3,000만톤 중 90%가 중국 몫”이라며 “중국 철강 산업의 구조조정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리 부회장은 이 점에 대해서도 공세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설비 감축은 전 세계 모든 철강 생산국의 문제”라며 “중국은 여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특히 “중국은 전체 생산량 중 10% 남짓을 수출하는 데 반해 한국은 전체 생산량의 50%를 수출하고 있다”며 국내 업체에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포럼에 동석한 김창수 동부제철 사장이 “중국이 현재 구조조정을 통한 설비 감축에 나서고 있다고 하지만 생산량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반박하자 리 부회장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당국이 생산량에 대해 직접적인 관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중국 정부를 변호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구조조정 이후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정부가 구조조정이 일단락됐다고 판단하면 ‘싹수’ 있는 자국 업체에 대한 밀어주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대형 철강 업체 관계자는 “(중국 철강사는) 예외 없이 국영 기업이라 투자가 확실히 뒷받침된다”며 “글로벌 2위 중국 보무강철이 지난해 보산강철과 무한강철의 합병으로 탄생한 만큼 구조조정 이후 중국 정부의 파상공세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은 유럽(아르셀로미탈), 일본(신일본제철), 한국(포스코)이 기술력에서 앞서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이 연구개발(R&D)을 강화하면 격차가 생각보다 급격히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이상훈·김우보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