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사드'도 힘든데...멤버십 포인트 문제로 총수 부르겠다는 정치권

[올해도 '기업인 국감']

총수·금융 CEO 대거 포함된 정무위 증인 명단 나돌아

비상장사 공시위반·불건전영업행위 등 이유도 제각각

'12시간 앉아있다 30초 답변' 국회 기업갑질 반복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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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의 평균 국정감사 소환 기업인 수는 124명으로 16대 때의 57.5명보다 2배 이상 많다. 하지만 19대 국회에 출석한 기업인 증인 가운데 5분 미만으로 답변한 이들은 무려 76%나 된다. 12%는 발언 기회조차 없었고 일부는 12시간 동안 앉아 있다가 30초만 답변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시간이 돈인 기업 경영인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런 구태가 문재인 정부의 국회에서도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 정부가 공정경쟁을 앞세우고 있는데다 대기업 개혁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알려진 정무위원회 기업인 증인 요청 명단을 보면 기업집단 및 비상장사 공시위반, 멤버십 포인트 비용부담, 보험사기 연루 임직원 방치, 불건전 영업행위 지속 등의 사유가 언급돼 있다. 이유도 제각각인데 기업 이미지와 대내외 영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감 증인 출석 사유로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정치권 내부에서도 나온다.

정치권의 무차별적인 기업인 호출로 ‘경영 공백’ 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시장 질서확립’ ‘재벌개혁’ 의지와 맞물리면서 기업 오너 등을 포함해 상당수가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프랜차이즈 및 대형 유통 업체의 불공정거래 관행, 통신비 인하 문제, 관세청의 면세점 점수조작, 발암 생리대 논란 등 굵직한 현안과 얽힌 기업인들은 각 당에서 증인 채택을 벼르고 있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 국감에서 증인과 참고인을 포함해 대략 120명 정도가 국감장에 나오게 될 것”이라며 “거의 모든 최고경영자(CEO)가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총수를 포함한 기업인들이 대거 국감 증인으로 불려 나가는 데는 증인 협상부터 국정감사장에서의 질의 과정까지 견제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의원실마다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는 ‘국감 스타’가 되기 위해 기업의 경영활동을 고려하지 않고 대다수의 기업 증인을 요청해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고 생중계되는 국감장에서는 증인과 5m 남짓 떨어진 거리에서도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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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증인 신청 규모는 국회마다 증가했다. 17대 국회에서는 연평균 52명이던 기업인 증인이 18대 때 77명, 19대 때는 124명으로 대폭 늘었다. 20대 들어 지난해 첫 국감에서의 기업인 증인은 150명이었다. 특히 국정감사와 함께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가 열렸던 2016년 국회에는 유례없이 기업 총수들이 국회를 다녀갔다. 아울러 기업 증인을 불러놓고 보호받아야 할 영업 비밀을 요구하는 경우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날 확정되지 않은 정무위 증인 명단이 유출되자 재계와 금융권 모두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명단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허창수 GS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이 일감 몰아주기, 오너 일가 지분변동의 사유로 포함됐다. 금융권에서는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을 비롯해 삼성증권·하나대투증권·메리츠종합금융증권·신영증권 등 5개사의 회장 또는 대표이사가 명단에 들어갔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뜩이나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데 기업 활동에 매진해야 할 각 기업 및 금융기관의 대표이사들을 줄줄이 국감 증인으로 불러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각 금융업종별로 증인 요청 사유가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한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에 거론된 업체들이 실제로 국감 증인 채택 대상 기업이 되더라도 대표이사보다는 담당 임원이 참석하는 선에서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상임위원장단 회의에서 기업인의 무리한 출석 요구를 하지 말자고 제안하는 등 국정감사 문화 개선에 대한 요구가 정치권 안팎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2017년 국감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권 관계자는 “야당에서 여권이 됐다고 해서 기업에 대한 온정주의는 없다”고 밝혔다. 야당 역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존재감 부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 증인 출석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여권과 야권 내부에서도 중국의 경제 보복 등으로 ‘기업인 줄소환’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 최종 증인 협상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여권 내부에서도 증인 요청과 관계없이 야당과 증인 명단 협상을 통해 증인 출석 규모를 줄일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바른정당 정무위 관계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에만 기업 증인 신청을 요구할 것”이라며 “민생 관련 유통기업과 문재인 캠프 출신 공공기관장 인사에 집중하겠다”고 설명했다./박형윤·노희영기자 manis@sedaily.com

박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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