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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①]‘레베카’ 김선영 “어떤 사람을 지독하게 믿는다는 건...광기 그 이상”

김선영이 말하는 ‘레베카’&‘댄버스’의 모든 것

뮤지컬 ‘레베카’는 영국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가 1938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과, 영화 감독 알프레도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만든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뮤지컬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으로 거장 반열에 오른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와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의 작품으로, 2006년 독일에서 첫 프리미어를 성공한 뒤 지난해까지 전 세계에서 1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에서는 2013년 초연된 뒤 올해로 네 번째 공연을 맞았다.

뮤지컬배우 김선영 /사진=조은정 기자뮤지컬배우 김선영 /사진=조은정 기자


공연은 아내 레베카와 사별한 막심 드 윈터와 재혼한 나(I)가 맨덜리 저택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며 레베카의 죽음을 밝히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 중심엔 ‘레베카’를 그 누구보다 믿고 숭배하는 댄버스 부인이 있다. 막심 드 윈터 역에는 민영기, 정성화, 송창의, 엄기준이, 레베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댄버스 부인 역에는 김선영, 신영숙, 옥주현이 캐스팅됐다. 또 맨덜리 저택에 새 안주인이 된 순수하고 섬세한 나 역에는 김금나, 이지혜, 루나가가 열연 중이다. “진짜 댄버스 부인이 나타났다” 는 말이 어울리는 18년차 뮤지컬 배우 김선영을 만났다.


◇ 완벽한 ‘레베카’에 대해



타이틀 롤에 등장할 뿐 아니라 모두가 칭송하는 여인 ‘레베카’는 공연 내내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실체는 맨덜리 저택의 가정부 댄버스 부인, 남편인 막심, 막심의 누이인 베아트리체, 소란스럽고 수다스러운 미국의 부유층 여성 반호퍼 부인, 그리고 레베카의 사촌이자 그녀의 내연남이었던 잭파벨,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벤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을 뿐.

이 중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신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아온 여인이다. 레베카가 죽은 이후에도 그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맨덜리 저택 곳곳에 그녀의 흔적을 소중히 간직한다. 또한 갑작스럽게 맨덜리의 새로운 안주인이 된 ‘나(I)’를 인정하지 못하고 그녀를 내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댄버스 부인’으로 열연중인 배우 김선영은 “레베카‘는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고 말했다.

“레베카는 굉장히 아름답고 우아하고 고상해요. 모든 품위있는 조합의 완성체죠. 뒤에가선 그와는 다른 인물이었다고 밝혀지기도 해서 다중적이고 이중적인 인물이다고 정의내리기도 하는데, 계속 옆에서 지켜봤던 댄버스는 막심이 이야기하는 내용이든 누가 이야기하는 것이든 동의하지 않아요.

분명히 진실은 존재하겠지만, 댄버스가 바라보는 레베카, 또 다른 인물들이 이야기하는 레베카가 다 달라요. 그렇다고 그녀가 쓰레기 같고 사악하고 누군가를 기만하는 그런 인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느꼈다고 해도 절대 믿지 않는거죠. 오히려 누구든 저 여자랑 있으면 사랑했고, 누구든 따라오고 싶었고, 누구든 행복하다고 믿었을거라 봐요.



/사진=EMK뮤지컬컴퍼니/사진=EMK뮤지컬컴퍼니


◇ ‘레베카’와 ‘댄버스’가 함께한 비밀의 시간



김선영은 ‘레베카’와 ‘댄버스’가 신분차이는 있지만, 어린 시절 자매처럼 자란 사이라고 했다. 그 속에서 끈끈한 유대감이 싹 터 집착 그 이상의 마음이 생겼을 거라는 것.

“어렸을 때 레베카 집안에서 고용한 유모의 딸이 댄버스라 생각해요. 레베카의 엄마가 아름다운 여배우였겠죠. 레베카도 무명이든 유명이든 여배우의 길을 걸었다고 봐요. 엄마가 일해야 해서 유모를 고용하고, 그 딸(댄버스 부인)이 이 딸(레베카)을 바라보면서 컸단 말이죠. 항상 레베카의 모습을 바라보고 레베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댄버스는 경청자의 입장이 강했을 거라고 봐요. 더 말을 하고 싶어도 늘 집중하고 바라봤겠죠. 레베카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때도 살피면서 레베카가 하는 말, 눈빛 하나에 반응하면서 ‘참 예쁘구나’고 생각했겠죠.”

사랑은 감탄이 되고, 진리가 된다. 거기에 열등감이 끼어들게 되면 상대에게 집착하게 되고 그 이상을 갈망하게 된다.


“댄버스는 나한텐 없는 걸 가지고 있는 레베카의 자태와 여러 가지 모습을 보면서 모든 사랑과 감탄을 내보였을 것 같아요. 그것이 진리가 되는거죠. 모든 게 믿어지고, 절대적으로 맞다는 생각이요. 이 아이의 손을 끝까지 잡고 가야겠다는 생각, 어떤 상황 속 처하더라도 난 누구보다 이 아이를 믿어줘야 한다는 생각이요. 둘 사이에 끈끈한 연대가 그렇게 깊어졌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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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와 ‘댄버스’의 관계는 단순히 동성애 혹은 인간애로 재단화할 수 없다. 김선영에 따르면, “레베카 실체보다 더한 것을 볼 수 있는 관계이다”고 한다.

“둘 사이의 관계를 단순화 시키면 생각 할 수 있는 폭이 작아져요. 동성애적으로 가도 안 되고, 인간애적으로 가도 안 돼요. 어떤 사람의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보는 경우가 있죠. 사랑하기도 하고, 똑같이 되보고 싶은 욕구가 커지기도 하고,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열등감이 생기기도 해요. 누구나 어린 시절에 느낀 열등감이 살아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레베카와 댄버스 사이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것이 있어요. 둘 만이 나눈 비밀 이상의 정신적 관계가 있었다고 봐요. 갈망이나 야망 아주 복잡한 것들을 레베카에서 보는거죠. 광기나 집착으로 가지 않고 그 이상을 봤다고 봐요.”

/사진=EMK뮤지컬컴퍼니/사진=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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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MK뮤지컬컴퍼니/사진=EMK뮤지컬컴퍼니


◇ ‘레베카’가 사라진 1년 뒤



수십년의 시간을 같이 보낸 댄버스와 레베카, 둘의 사랑은 결국 치명적인 독으로 남겨지게 된다. 이에 김선영은 “댄버스는 어떤 사람을 지독하게 믿은거죠. 그렇기 때문에 레베카가 (도리에 어긋나는)틀린 말을 해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미쳐가는 거죠. 1년 전에 레베카가 사고로 죽었다는 말 역시 그래요. 물리적으론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어요. 하지만 지금은 바다 깊은 곳에 잠드셨지만, 곧 맨덜리 저택으로 돌아올거라 믿어요. 그녀가 죽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거죠. 사람들은 ‘레베카’가 죽었다고 하지만 내 눈으론 확인하지 않은 사살이죠. 그렇게 뛰어난 아이기 때문에 쉽게 죽지 않았을거라 생각해요. 어찌보면 무섭죠? 레베카 없는 1년 동안 수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생각 속으로 ‘쑥’ 들어가다보니 1년 사이에 급격하게 미쳐갔을 것 같아요.”

레베카와 막심이 부재했던 맨덜리 저택에서 1년간 칩거하며 살아갔던 댄버스 부인은 점차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 앞에 가식 없는 순수한 ‘나’가 새로운 안주인으로 들어오게 된다.

“1년 뒤에 막심이 방황을 멈추고 새로운 안주인과 들어와요.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해갔던 댄버스 부인은 새로운 드윈터 부인인 ‘나’를 보면서 ‘허름하기 짝이 없는 너는 뭐지?’라고 생각해요. 사실 상대거리도 안 되는 존재인데, 눈에 계속 거슬리는거죠. 그러면서도 내 눈으로 ‘레베카’를 만나기 전까진 이 맨덜리 저택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댄버스 부인은 이 대저택을 관리하는 사람인거죠. 지금으로 치면 삼성 일대 저택을 관리하는거니까요. ‘레베카’를 통해 신분상승까지 한 거죠. 댄버스 또한 자기 욕망이 아니라고 해도 레베카가 이룬 야망 속에 자신도 함께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 건 레베카 것이기 때문에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어요.”



뮤지컬배우 김선영 /사진=조은정 기자뮤지컬배우 김선영 /사진=조은정 기자


◇ ‘영원한 생명’ 레베카 그리고 난초



‘레베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물은 바로 난초이다. 이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넘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레베카’ 작품을 연습하면서 김선영은 실제로 난초를 키웠다고 한다. 공기정화 때문에 키우기 시작한 난초에서 그는 꿋꿋한 생명력을 느낀다고 했다.

“난초는 습도에 예민해요. 어린 아이가 이것 저것 물어 뜯으면서 돌아다니니까 감당이 안 돼서 베란다에 놔두고 방치하고 했는데, 걔네들이 안 죽어요. 베란다를 통해서 빛이 조금이라도 들어오거나 빗물이 들어오면 어느 순간 꽃이 피더라구요. 난초에 피는 꽃은 특별하다는 가사의 의미가 바로 이해가 되더라구요. ‘레베카’를 하면서 더 생생하게 느껴져요. 예쁜 꽃들은 금방 시들기도 하는데 난초는 죽은 듯 한데 굉장히 꿋꿋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면서 섬뜩한 느낌이 들던데요.”

마지막으로 김선영은 그 누구보다 제일 궁금해지는 인물이 바로 ‘레베카’이다고 했다.

“어떤 남자도 가질 수 없었고, 절대 굴하지 않았던 여성이라고 작품 속에서 나오는데 제가 연습하면서도 궁금해요. 도대체 레베카는 어떤 여자인거야. 정작 주인공은 안 나타나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레베카가 등장하는 작품을 만들었으면 해요. 창작뮤지컬 ‘레베카2‘ 혹은 ’레베카의 방‘이란 제목이 괜찮을까요. 호호”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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