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 그룹의 신임 회장은 장거리 달리기에 푹 빠져있는 마라톤 마니아다. 그는 그 지구력으로 인도에서 지배구조가 가장 복잡한 최대 기업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을까?
회사 : 타타 그룹
나라 : 인도
회장 :나 타라잔 찬드라세카란 Natarajan Chandrasekaran
순위 : N .A.
나타라잔 찬드라세카란 Natarajan Chandrasekaran은 44세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는 인도의 IT 대기업 타타 컨설턴 시 서비스 Tata Consultancy Services(TCS)의 최고운영책임자였다.(간단히 찬드라라고 불러달라고 말하는) 찬드라세카란은 오랜 근무 시간, 끊임 없는 출장, 회의로 점철된 분주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 주치의가 그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그는 “의사가 ’당신은 똑똑한 사람이지만 몸을 어리석게 혹사하고 있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의사로부터 조언을 받은) 다음 날 아침, 찬드라는 푹푹 찌는 열기로 가득한 뭄바이 도심으로 나왔다. 그는 컴퓨터 엔지니어로 평생 수학에 관심을 쏟았지만 운동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그 날부터 찬드라는 운동화 끈을 고쳐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첫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다. 이후 그는 수 년 간 꾸준히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고, 세계 6대 마라톤 대회(보스턴, 베를린, 시카고, 런던, 뉴욕, 도쿄)를 완주하기도 했다. 기록이 단축될수록 TCS의 기업 등급도 상승했다. 운동을 시작한 지 2년 후인 2009년, 그는 TCS의 CEO에 올랐다. 회사의 시가 총액은 인도 기업 중 최고 수준인 710억 달러로 상승했다. 이제 54세가 된 그는 1년에 적어도 한 번 풀 코스 마라톤, 그리고 여러 번 하프 코스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다. 그는 약물 치료 없이 당뇨병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찬드라는 “내 삶은 마라톤을 뛰기 전과 후로 나뉜다. 마라톤을 시작한 후 좀 더 차분해졌고, 생각이 깊어졌으며, 더 많은 끈기도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런 자질들은 그가 회장으로서 기업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할 것이다. 지난 2월 찬드라는 타타 선스 Tata Sons 회장에 임명됐다. 타타 선스는 TCS를 비롯해 타타 그룹 내 수백 개 회사들을 통제하는 비상장 지주사다. 타타 그룹은 인도에서 가장 인정받는 대기업으로 랜드 로버 Land Rover와 테틀리 티 Tetley Tea 같은 서구 브랜드들도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 이사회는 작년 10월 다소 급작스럽게 사이러스 미스트리 Cyrus Mistry를 해임하고 찬드라를(본질적으론 CEO 역할을 수행하는) 회장에 임명했다. 미스트리는 그룹의 최대 개인 주주인 타타 가문의 자손이다.
미스트리의 해고는 인도 재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난한 법적 공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그룹 전체 매출과 주요 사업의 시장점유율이 줄어들었고, 현금 흐름도 타격을 입었다. 직원들과 투자자들은 찬드라가 TCS에서 펼쳤던 디지털 전략이 다른 타타 기업들에도 통하길 바라고 있다. 실제로 찬드라가 TCS의 CEO로 재임한 7년 동안 이 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3배 가까이 뛰었다. 쉼없이 완주를 하려는 마라토너라면 응당 그렇듯, 찬드라는 타타의 체질 개선에 다소 고통스러운 체중 감량이 수반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기업의 성장률, 수익성, 자본 이익률 같은 모든 운영 회사들의 실적을 들여다 볼 것이다. 몸을 만들지 않은 상태로 달릴 순 없다. 1마일을 6분에 주파하려면 일단 체중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에서 타타라는 이름이 갖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타타 그룹은 1868년 잠셋지 누세르완지 Jamsetji Nusserwanji가 설립했다. 그는 파시교도 출신(종교 박해 때문에 8세기에 인도로 피신한 조로아스터 교도의 자손)으로, 그가 속한 집단은 규모는 작지만 상업적 감각이 발달한 공동체였다. 잠셋지는 아버지 무역회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이후엔 독립 사업체를 꾸려 아비시니아 Abyssinia *역주: 에티오피아의 별칭에 주둔한 영국 군대에 군수품을 공급해 자신만의 이익을 창출했다. 그 후 직물 공장에 투자한 그는 뭄바이 인도문(Gateway of India) 맞은 편에 거대한 타지마할 팰리스 호텔 Taj Mahal Palace Hotel을 짓기도 했다. 1904년 사망하기 전, 인도 최초의 철강공장 건립 계획을 세워 그 공장이 현재 자르칸드 Jharkhand 주에서 가동되고 있다.
잠셋지 사망 후 수십 년이 지난 1944년, 포춘에 ‘타타 가문(House of Tata)’의 프로필이 게재됐다. 잠셋지는 포춘에 ‘턱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두른, 외모에선 종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매우 뛰어난 인도 출신 사업가’로 묘사되었다.
타타 그룹은 지난 149년 동안 복합 기업으로 변신하며 확장을 꾀해 왔다. 현재 타타 그룹의 포트폴리오는 소금에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실제로 타타 그룹은 인도의 가장 큰 포장 소금 브랜드와 IT 기업 TCS,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무수히 많은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광범위하다’는 말은 타타 제국이 가진 다양성의 극히 일부만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매출 기준 타타 그룹의 최대 사업은 403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타타 모터스 Tata Motors다. 이 기업은 올해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중 247위에 올랐다. 그 외에도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철강 기업, 최대 전력 회사, 주요 화학 제조업체, 고급 보석 부티크 체인, 여러 개의 금융 서비스 기업들, 항공 및 군수 물자 제조업체, 인도와 스리랑카 전역에 걸쳐있는 51개의 대규모 차 농장 등을 보유하고 있다.
타타는 인도에서 가장 글로벌한 대기업 중 하나다. 타타가 인수한 해외기업 중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차 브랜드인 테틀리 티, (브리티시 스틸 British Steel과 독일 철강 기업 후고벤스 Hoogovens가 1999년 합병해 탄생한) 철강 대기업 코러스 Corus, (2008년 포드 모터가 인수한) 재규어 랜드 로버 Jaguar Land Rover(JLR) 등이 있다. 그 밖에도 타타 그룹의 인디언 호텔스 Indian Hotels는 뉴욕의 피에르 호텔 Pierre Hotel, 베니스의 치프리아니 호텔 Cipriani Hotel 같은 호화 호텔들을 보유하고 있다. 타타 글로벌 베버리지 Tata Global Beverages는 2011년 스타벅스와 계약을 맺어 인도에 스타벅스 매장을 열기도 했다.
타타 그룹의 총 직원 수는 70만 명, 연결 매출액은 1,040억 달러에 달한다. 단일 상장 기업으로 환산하면, 타타 그룹은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최상위 50대 기업 안에 들 수 있는 규모다.
타타 그룹 내에서도 특히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기업은 TCS와 JLR이다. 찬드라가 CEO였을 당시 TCS-해외 매출이 총 매출의 94%를 차지한다-는 같은 업종 국내 라이벌 기업 인포시스 Infosys와 위프로 Wipro를 훨씬 앞서나갔다. 지난 3월 종료된 회계연도 기준 총 매출액은 176억 달러였다. 순이익도 거의 40억 달러에 달했다.
JLR 역시 독보적인 실적을 올리고 있다. 영국의 장관들은 JLR을 자국의 산업 부흥이 키워낸 대표 기업으로 극찬하고 있다. 한때 곤경에 처하기도 했던 JLR은 지금은 영국 최대 자동차 생산업체로 발돋움해 있다. 이 같은 성공의 배경에는 타타의 지원과 독일 출신 CEO 랄프 스페스 Ralf Speth(포드와 BMW 임원을 역임했다)가 있었다. 이 기업의 지난해 회계연도 기준 판매량은 전년 대비 16% 증가한 60만 4,000대를 기록했다. 현재 영국 외 매출이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에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스타 기업들과는 별개로, 많은 타타 그룹 계열사들은 절실한 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그룹 내 대규모 사업들은 침체되고 있고, 소규모 민첩한 라이벌 기업들과의 경쟁에도 취약해지고 있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기에 너무 규모가 작은 사업들도 있으며, 그룹 내 일부 업체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관리층이 너무 두꺼워 어젠더가 상충되기도 하고, 기업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억눌리기도 한다.
JLR의 모기업 타타 모터스는 최근 타타 그룹의 부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타타 모터스는 한 때 상업용 트럭으로 인도 시장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2012년 최고 60%를 상회하던 점유율이 지난해에는 44%까지 급락했다.
타타 스틸 Tata Steel의 국내 사업은 꾸준한 수요 덕분에 아직은 건재한 상황이다. 그러나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유럽 사업이 지난 5년 중 4년 동안 적자를 기록했다. 연금 의무와 관련된 영국 정부와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타타 스틸 유럽과 독일의 티센크루프 Thyssenkrupp간의 합작 사업 논의도 중단된 상태다. 2015년 말에는 타타 스틸의 영국 사업이 매일 100만 파운드씩 손실을 입기도 했다. 타타 파워 Tata Power, 타타 케미컬, 인디언 호텔스와 타타 텔레서비스 Tata Teleservices도 모두 이익이 미미하거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7년 3월 말 회계연도 기준으로 TCS와 타타 모터스는 타타 그룹 총 매출의 59%, 순이익의 90%, 배당금의 80%를 차지했다. CEO에서 해임된 미스트리는 며칠 후 기업 이사들에게 메일을 보내 그룹 내 수익성 없는 5개 회사가 170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 상각(write-downs)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타타 선스는 이를 부인했다).
찬드라는 그룹의 ‘출혈’을 신속히 막아내야 한다. 지난 4월 열린 그룹 임원 미팅에서 그는 ‘하나의 타타(One Tata)’ 가치를 강조한 슬라이드를 띄우며 단합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른 회의에선 “타타 그룹이 좀 더 책임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경고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운영 회사들의 실적을 평가할 수 있는 상세한 지표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찬드라는 “성장과 확장에 초점을 맞춰 그룹을 개편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실제로 타타의 계열사 중에는 동일 업종에서 서로 경쟁하는 회사들이 많아 인수 합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타타의 베테랑 임원들도 타타 파이낸스 Tata Finance, 타타 하우징 파이낸스 Tata Housing Finance, 타타 캐피털 파이낸스 Tata Capital Finance가 별도로 운영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찬드라는 잭 웰치 Jack Welch식 해법 *역주: 잭 웰치는 규모를 키워야 시장을 장악할 수 있으며, 1~2등을 하지 못하는 사업은 과감히 매각하거나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직 업계를 주도하는 대규모 사업들만 포함되도록 기업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타타는 이미 1,000억 달러 규모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선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 다수의 작은 기업들로는 도약할 수 없다. 우리는 최고 기업들이 필요하다. 모든 기업이 반드시 해당 분야에서 1, 2등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최고의 기업들을 보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저조한 자회사들에 대한 매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주목 받기 위해 사업을 처분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고, 내일도 수익을 내지 못할 것 같은 사업들을 정리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숙고해왔다. 우리는 확실히 포트폴리오를 정리할 것이다.”
또한 찬드라는 인도에서 가장 신망 받는 기업 금융가들을 영입해 대대적으로 조직을 개편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 중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 Bank of America Merrill Lynch 출신의 안커 버마 Ankur Verma, 스탠더드 차터드 뱅크 Standard Charterd Bank의 니푼 아가왈 Nipun Aggarwal, 그리고 아디티야 비를라 그룹 Aditya Birla Group의 기업전략 책임자 사우라브 아가왈 Saurabh Agrawal이 포함되어 있다.
아가왈은 메릴린치 협상 전문가 출신으로 2004년 TCS의 기업공개(IPO)를 도운 바 있다. 그는 타타 그룹의 최고재무책임자를 맡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타타가 보유한 회사들을 4~5개의 큰 그룹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회장에게 보고하는 임원이 너무 많으면 결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인수 합병이나 매각을 통해 소규모 벤처 사업들을 처분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확장성과 수익성 있는 사업들만을 하길 원한다. 향후 2~3년 동안은 주로 이 부분을 의사결정의 잣대로 삼을 것이다.”
아가왈은 타타의 상장 기업들에도 칼을 대려 하고 있다. 그는 “현재 29개인 상장 기업 수를 ‘한 자리 수’로 줄이고 싶다”며 그룹 포트폴리오의 ‘대대적인 감축’을 천명했다. 아가왈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상장 기업의 3분의 1을 줄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타타 같은 그룹에겐 매우 극단적인 조치다. 그렇다면 이 조치는 시행까지 얼마나 걸릴까? 아가왈은 “만약 ‘향후 5~10년 정도’라고 대답하면, 나는 내일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다. 찬드라가 ‘30일 내에 끝내세요’라고 요구할 것” 이라고 말했다.
타타가 포트폴리오를 개편하려면, 그룹의 복잡하고 교묘한 기업 구조를 손봐야 한다. 회사의 고위 경영진은 때때로 그룹을 제너럴 일렉트릭 General Electric처럼 다각화된 복합 기업이나 사모펀드, 심지어 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away 같은 투자 회사들과 비교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비교는 잘못된 것이다. GE는 궁극적으로 한 명의 CEO가 하나의 주가로 대표되는 단일 기업을 통솔하는 구조인데 반해, 타타 그룹은 수백 개 회사들이 그룹의 느슨한 통제 하에서 제각각 운영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타타 선스는 전형적인 비상장 지주 회사답게 하위 운영 기업들의 지배 주주 역할을 하고 있다. 관리자와 이사진의 임명, 운영 지원, 투자 자본 제공, 그룹 내 모범 경영 사례 전파 등의 임무도 관할하고 있다. 이 같은 타타 브랜드의 후광이 모든 기업에 미치고 있다. 하지만 현 구조로는 그룹 내 기업들이 동일한 전략을 수행하게 만드는 건 고사하고, 그룹 회장이 개별 사업체의 실적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다른 지주회사와는 달리, 타타가 현재 투자 중인 회사들은 향후 수익 회수를 염두에 둔 투자 대상이 아니다. 타타 그룹이 투자해 온 기업들은 대개 그룹이 설립한 회사들이다. 대부분 기업명에 타타가 포함되어 있다. 타타 그룹의 일원이기 때문에 매각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인식 하에 회사가 운영되고 있다.
실타래처럼 얽힌 복잡한 지배구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타타 선스는 66% 지분을 가진 비영리 자선단체 타타 트러스트 Tata Trusts 대표들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 단체의 임무는 타타 계열사들이 그룹의 창립 정신을 반영하고, 수익 일부를 인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선 활동 지원금은 타타 그룹의 배당금에서 나오고 있다. 그룹이 고전하면 배당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 공헌에 대한 철학은 타타 그룹 유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영국 식민 통치 시절 ‘타타 가문’은 많은 인도인들에게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인도인들은 식민 제국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인도 기업이 번창하는 건 그들의 산업적 역량이 출중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창업주 잠셋지와 후손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개인의 부를 신탁에 기부함으로써 그룹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타타 신탁은 현재 인도 최대 자선기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들의 막대한 기부금은 청소년들의 기술 역량을 함양하는 인도 과학원(Indian Institute of Science)과 인도 암 치료 및 연구를 선도하는 타타 메모리얼 병원 Tata Memorial Hospital 설립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런 정신은 잠셰드푸르 Jamshedpur에서도 찾을 수 있다. 타타 가문은 1900~1910년 허허벌판이었던 이 도시에 최초의 철강 공장인 타타 스틸을 세웠다. 타타 그룹은 사회주의 경제학자인 시드니 Sydney와 비어트리스 웹 Beatrice Webb을 인도로 초빙해 직원 복지서비스와 관련된 자문을 받았다. 공장 외부에는 학교, 병원, 크리켓 구장, 공공 정원들로 가득 찬 도심의 오아시스를 조성했다. 그 결과 잠셰드푸르는 수돗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인도 도시로 남아 있다.
수십 년 간 산업적 업적을 달성하며 아낌 없는 사회 공헌을 펼친 타타 그룹은 인도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업으로 입지를 굳혀왔다. 1991년부터 2012년까지 회장을 역임한 라탄 타타 Ratan Tata의 리더십 덕분에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키가 크고 다부진 얼굴을 가진 과묵한 미남인 (주로 이름 앞 글자를 따 RNT로 불리는) 라탄 나발 타타 Ratan Naval Tata는 오랫동안 인도 재계의 대부 역할을 해았다. 그는 타타 그룹 회장이 아닌 ‘인도’ 주식회사의 회장으로 비유되고 있다. 라탄은 창립자 잠셋지의 직계 후손은 아니었고, 잠셋지 부인 조카의 증손자였다. (우연히 성이 타타였던) 그의 친아버지 나발은 잠셋지 둘째 아들(라탄)의 미망인에게 입양됐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그와 그의 아들은 부유한 타타 가문의 일원으로 키워졌다. 1962년 코넬 대학에서 건축학 학위를 받은 라탄은 인도로 돌아온 후 잠셰드푸르로 파견돼 타타 스틸 공장의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견습을 받았다. 이후 수양 삼촌인 JRD 타타 회장 밑에서 일을 시작했고, 1991년에 그의 후계자로 임명됐다.
회장으로서 라탄은 멋진 인물이었다. 그는 경비행기를 즐겨 탔고(실제로 기량이 뛰어난 파일럿이었다), 값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녔다(그가 레드 페라리 캘리포니아 Ferrari California를 타고 뭄바이 머린 드라이브 Marine Drive를 달리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기도 했다). 그는 (봄베이 하우스 본사 로비를 유기견들에게 개방할 만큼) 주인 잃은 개들을 살뜰히 챙기기도 했다. 그의 이런 면모들은 언론을 통해 칭송되기도 했다.
2000년 이후 타타 그룹은 글로벌 시장으로 세를 확장해 나갔다. 그 뒤에는 라탄이 있었다. 그는 테틀리와 코러스, JLR, 피에르의 인수를 지원했다. 하지만 나서지 않는 겸손함 덕분에, 야심 찬 글로벌 기업가와 겸손한 호감형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풍겼다. 국내에서 그가 대표적으로 추진하던 사업은 나노 Nano였다. 나노는 저소득층에게 판매한 2,000달러짜리 소형차였다.
그러나 사이러스 미스트리가 법원에 제출한 소송 서류에는 라탄이 덜 돋보이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미스트리 가문은 타타 그룹과 인연이 깊다. 인도 최대 규모의 건설·엔지니어링 대기업인 미스트리 기업은 타타 스틸과 타타 모터스 공장, 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 건설에 일조했다. 미스트리 가족이 타타 선스 지분 18.4%를 취득해 최대 민간 주주가 된 배경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지만 1980년 무렵에는 미스트리 가의 영향력이 확고해졌고, 사이러스의 아버지 팔론지 Pallonji는 타타 선스의 이사가 됐다. 그는 워낙 조용한 막후 실세라 ‘봄베이 하우스의 유령’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2006년 그의 아버지가 은퇴한 후 사이러스도 이사에 올랐다. 그는 동료 이사들로부터 “유능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스트리는 이번 기사와 관련된 코멘트를 회피했다. 라탄 타타도 인터뷰 제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미스트리의 해임 이후, 타타 선스는 그가 내부 사정에 어두워 사외 고문단에 휘둘렸고, 복잡한 구조의 대기업을 이끄는 과정에서 미숙함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타타 그룹이 밝힌 미스트리 해임의 공식 이유는 그가 손실을 보고 있는 회사의 회생 작업을 더디게 진행했고, 그룹 문화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으며, 나머지 이사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스트리가 해임 며칠 뒤 이사회에 서한으로 밝힌 주장은 다소 상반된 것이었다. 그는 전임자들이 망쳐 놓은 상황을 너무나도 강력하게 정리하려 했으며, 라탄의 지인 및 사업 파트너와 진행하는 그룹 차원의 거래에 대해 숱한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에 자신이 해고됐다고 반박했다. 라탄에게 신세를 진 타타 신탁의 지명 이사들이 매 순간 그의 행보에 ‘엄격한 제한을 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스트리 측 설명에 따르면, 애초에 그를 회장으로 추대한 것도 라탄 타타였다. 라탄이 2011년 회장직을 제안했을 때, 미스트리는 가업 운영에 만족한다며 그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라탄의 나이가 법정 퇴직 연령인 75세가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타타 선스의 후보탐색 위원회는 적합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라탄이 독신이었기 때문에 가족 중에서도 후보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때 미스트리는 부친이 보유한 타타 선스의 지분이 가족 사업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2년 라탄이 한 번 더 제안을 하자 미스트리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미스트리를 후계자로 발표하면서 라탄은 신임 회장에게 ‘재량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라탄은 자유롭게 그룹을 통제했다. 그는 타타 선스와 타타 신탁의 회장을 겸하고 있었고, 몇 년 동안 쪽 이사회에 확고한 자기편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라탄은 그만큼의 권한을 미스트리에게 주는 것을 주저했다. 그는 지주 회사 회장직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신탁의 회장이었다.
미스트리 임명 직후, 라탄은 회사 내규의 개정을 추진했다. 타타 선스 이사회 신탁 지명 이사에게 더 큰 권한을 주고자 한 조치였다. 2014년 그는 2차 개정 승인을 받아 신탁 지명 이사들에게 찬성 투표권(affirmative voting rights)을 부여했다. 미스트리의 주장에 따르면, 거의 모든 주요 이사회 결정에 대한 보류 거부권(pocket veto) *역주: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자동으로 폐기되는 것 을 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미스트리는 신탁 지정 이사들이 ‘우편 배달부’처럼 오직 라탄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일밖에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미스트리는 회장 임명 직후 라탄이 자신에게 아시아 2 개 항공사-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와 싱가포르 에어라인-와의 합작 사업을 승인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미스트리는 이 합작사업들이 실속 없는 프로젝트라고 판단했다. 신중하게 검토한 사업 제안이라기보단 비행기에 대한 라탄의 개인적 집착이 반영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그는 두 가지 사업에 모두 반대했지만 승인할 것을 종용 받았다고 주장했다.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밖에도 미스트리는 타타 스틸의 영국 사업과 저비용 승용차 나노 사업을 접으려 했다. 그러나 그 때도 라탄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주장했다. 미스트리는 나노 사업에선 수익이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라탄이 부분적으론 ‘감정적 이유’ 때문에, 부분적으론 개인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전기차 회사에 나노가 중요한 공급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차 사업 유지를 고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라탄과 회사는 그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
미스트리는 라탄이 회장으로 재임하던 마지막 몇 년 간, 타타 그룹이 싱가포르와 인도에 등록된 유령회사에 300만 달러 이상을 불법으로 지급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라탄이 자신의 친구와 수의계약(non-competitive contract)으로 거래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라탄의 또 다른 친구인 남인도 출신 사업가 C. 시바산카란 Sivasankaran에게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된 가격으로 타타 텔레콤 벤처 사업의 상당 지분을 매각했다고 주장했다(타타 그룹은 이 모든 것이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며, 시바산카란에 대한 매각 결정은 타타 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비즈니스 협상’의 결과였다고 반박했다). 해임 한 달 전 열린 마지막 이사회에서, 그는 라탄과 시바, 일본의 NTT도코모가 관여된 2008년 계약과 관련해 시바산카란의 시바 그룹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
타타 선스는 미스트리 측의 주장을 모두 부인했다. 지금까지 미스트리는 법원에서 거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스트리 측은 법원에 소액 주주들에 대한 관리 부실 및 압력행사와 관련된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지분 요건을 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인도 기업법률재판소(National Company Law Tribunal)가 이를 거부했다.
TCS를 고수익 회사로 만들어 놓은 점을 고려하면, 찬드라는 타타 그룹 회장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는 회장에 오를 가능성이 적었다. 그룹의 149년 역사 상, 그는 타타 가문 외부에서 영입된 최초의 회장이었다. 게다가 파시교가 아닌 타밀 *역주: 남인도 및 스리랑카에 사는 인종 출신이었다.
찬드라는 남동부 타밀 나두 Tamil Nadu 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수학과 컴퓨터에 능했던 그는 지역 공과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87년 인턴으로 TCS에 입사했고, 몇 달 후 정식 직원 제안을 받았다.
올 2월까지 줄곧 TCS에서만 일했던 그는 “평생 이력서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동료들은 찬드라를 원칙에 충실하고 성실한 인물로 평가한다. 고객들도 그를 친절하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많은 이들이 TCS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그가 고객 니즈를 이해하기 위해 일대일 미팅을 고집한 것을 꼽고 있다. 찬드라는 고객들을 최대한 자주 만나기 위해, 종종 비행기에서 잠을 자며 1년에 200일 정도를 유럽, 미국, 아시아 등지에서 보내왔다.
그는 TCS에서 자신의 마라톤 열정을 아낌 없이 공유했다. 고위 임원들에게 새벽 5시 ‘팀워크’ 러닝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지역 러닝 클럽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의 열정이 인도에 마라톤 붐을 일으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의 코치 디팍 찬드라 Deepak Chandra(친인척 관계는 아니다)는 찬드라를 “인도의 마라톤 대부”라고 부르고 있다. 찬드라는 TCS를 보스턴, 시카고, 암스테르담, 베를린 마라톤 대회의 스폰서로 등록했다. 2014년에는 뉴욕 마라톤 대회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기도 했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과 관련된 대화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건 그가 회사와 마라톤에서 늘 데이터에 집중했다는 점이었다. 뉴욕시 마라톤 관리단체인 뉴욕 로드 러너스 New York Road Runners의 마이클 카피라소 Michael Capiraso 회장은 “찬드라와의 대화는 대부분 ‘어떻게 하면 디지털 기술로 마라톤 경기를 개선할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TCS 덕분에 뉴욕 마라톤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데이터 기록을 보유한 대회가 될 수 있었다. 30만 명 이상이 TCS가 설계한 마라톤 앱을 다운 받았는데, 관중들은 이 앱으로 선수들을 추적하고 경기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찬드라에게 TCS가 마라톤 디지털화를 위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묻자, 그는 눈을 반짝이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지난 40년 간 마라톤에 참여한 20만 명의 기록이 축적되어 있다. 누가 퀸즈버러 Queensboro 다리에서 고전했는지, 브롱크스 Bronx 지점에선 몇 명이 한계에 부딪혔는지 등의 데이터를 연령, 성별로 세분화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정보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도 무궁무진하다.” 찬드라는 이런 데이터 중심 접근법을 그룹 전반에 도입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전 세계 모든 기업이 데이터를 활용하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찬드라는 기업 경영에 있어 미스트리보다 더 많은 재량권을 받았을까? 라탄 타타는 미스트리 해임 이후 신탁 회장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의 전 비서 R. 벤카타라마난 Venkataramanan을 신탁 관리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찬드라는 타타 신탁에 대한 보고 체계를 크게 바꾸려 하지 않고 있다. “나는 회사가 모든 기업들과 진행하는 개별 업무들을 일일이 브리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주요 주주로서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보고하는 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는 라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젝트들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찬드라는 타타 모터스의 우선 순위는 나노보단 다른 사업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승용차 판매는 비중이 작은 사업인데, 그 중에서도 나노는 훨씬 더 소규모 사업”이라며 “그러나 나노 공장 폐쇄 결정을 내릴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달관한 듯 보였다: “당신도 재계를 잘 알고 있겠지만, 만약 내게 다른 CEO만큼 권한을 갖고 있다고 느끼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독단적인 권한일 순 없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일어나 ‘금융 서비스 사업을 접는다’는 결정을 내릴 순 없는 것이다. 나는 이사회와 오랜 시간 논의를 한다. 모든 의사결정은 철저하게 숙고돼야 한다. 경영진에게 그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의 권한에 만족하는 편이다.”
찬드라는 타타 선스와 미스트리 가의 관계에 대해선 조금 덜 낙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현재 재판과정에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선 이야기할 수 없다. 나도 과거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법원의 판결에 따를 것이다.” 앞으로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그는 아주 짧게 답변했다. “잘 모르겠다.”
그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그러나 찬드라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뉴욕 마라톤 출전을 위한 훈련도 시작했다. 아직까진 타타 그룹의 새로운 장거리 주자가 속도를 늦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타타 그룹의 현주소
타타 그룹은 수백 개의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신임 회장 나타라잔 찬드라세카란은 “기업 포트폴리오를 간소화 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음은 타타 그룹의 주요 계열사 구성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CLAY CHAND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