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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②]‘벤허’ 서지영, “난 행복한 배우...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신데렐라’, ‘삼총사’ 등에서 탁월한 연기력은 물론 다양한 캐릭터 변신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온 서지영은 뮤지컬 계에서 손꼽히는 24년차 배우다.

그 중에서도 2004년 공연된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으로 여배우의 과도기를 넘겼고, 자연스럽게 나이에 맞는 역할도 하게 됐다.


“‘블러드 브라더스’ 전에는 제 나이보다 항상 어린 역할을 했어요. 그러다 제 나이에 맞는 엄마 역할을 하게 됐어요. 존스톤 부인 역으로 신시컴퍼니에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어요. 도대체 무슨 역을 하라는 거지? 란 생각을 했으니까요. 당시 영국 연출가 글렌 월포드가 존스톤 부인 역을 할 배우 없다고 했대요. 그래서 신시에서 콜이 왔고, 전 작품에 대한 정보도 모른 체 인터넷에 들어가서 넘버 음을 다 외워갔어요. 그 뒤에 합격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처음으로 애 9명을 둔 엄마 역을 맡아 일부러 살을 찌우기도 했어요. 매일 삽겹살을 먹어서 배가 이렇게 나왔을 정도였는데도 행복했어요. 그렇게 역할에 빠져 있었고, 칭찬도 많이 받아서 애정이 많은 작품입니다.”

배우 서지영 /사진=쇼온컴퍼니배우 서지영 /사진=쇼온컴퍼니


서지영은 93년 아동극부터 시작해 20년이 넘게 한길만 보며 달려왔다. 매일 매일 일찍 나와서 연습실을 청소하고 전단지를 붙이고 대사 하나, 노래 한 구절, 앙상블을 거쳐 주연에 이르렀다. 연극 ‘닥터지바고’에 이어 뮤지컬 ‘맥토’ ‘번데기’ ‘결혼일기’ ‘브로드웨이42번가’ 등 수 많은 초연 작에 출연했다. 그에겐 늘 무대가 삶의 현장이었다.

“정말 한눈 팔지 않고 무대만 보며 달려왔어요. 뮤지컬만 오래 해서 뮤지컬 보는 분만 절 아시잖아요. 그런 면에서 뮤지컬 하는 분이 견디기 힘들 때도 있어요. 남자배우들이 방송 쪽으로 많이 가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무대를 지킬 수 없어요. 병행을 해야 한다는 게 단순히 어렵다는 게 아니라 공연을 위해 시간을 조율해주지 않으세요. 그럴 때면 무대에 올인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오랜 시간 무대를 지켜왔지만 갑자기 무대쪽으로 온 연예인 때문에 관심이 밀릴 땐 솔직히 서운함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그는 특히 제작발표회 현장에 앉아있을 때가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연예인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현실 속에서 왜 뮤지컬 배우들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어야 하는지 서운했던 것.


“제작발표회 현장에선 연예인에만 질문을 많이 해요. 저희 뮤지컬 배우들은 가만히 앉아서 그저 웃고 있어야 해요. 질문 하나도 못 받아서 속상한 게 아니라 제가 했던 연륜이나 노하우가 무시되는 게 느껴져요. 그런 점이 다소 아쉬워요. 무대가 너무 좋아 이때까지 버텼는데, 뮤지컬 배우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땐 다소 씁쓸하긴 해요. 후배들도 똑같은 마음 일꺼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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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배우는 스스로를 포장하기 보다는 솔직하게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반 수다 반 속에서 그녀의 소탈한 매력이 묻어나왔다. 10년 전 인터넷 라디오 디제이 활동도 말했다. “소소하게 수다 떠는 걸 좋아해요. 글 올라오면 청취자들이랑 수다 떠는 게 그렇게 재미 있었어요. 다시 기회가 온다면 하면 좋겠죠. 내 팔자에 있다면 다시 하게 될 수도 있겠죠. 호호”

지금의 모습은 상상 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 그는 내성적이고 겁도 많았던 10대 소녀였다. 수줍음이 많아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은 가슴에 있지만 표현 하기는 쉽지 않았다. 누가 잘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달려들면 눈물부터 났다. 그리고선 집에 오면 스스로의 모습이 바보 같이 느껴져 후회감이 밀려왔다고 한다.

‘불행은 사람을 골라서 오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은 다 반사고, 물건을 사면 늘 불량품이 많았다. ‘안 좋은 일은 나에게만 닥친다’고 말할 정도로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계속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엄마가 던진 말은 “한번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였다.



“제가 너무 속상해서 울고 있던 날이었는데, 엄마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말 해 주셨어요.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건 한번만 더 조심히 품으면 해결될 일이야. 네가 이렇게까기 속상해할 일이 아니야. 긍정적으로만 생각해봐.’ 그 날은 그 말이 가슴에 팍 꽂혔어요. 또 불량품을 바꿀 일이 있으면 더 좋은 물건을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좋게 생각했어요. 지갑도 더 세심하게 챙기게 됐어요. 생각하기 나름이란 게 맞았어요. 물건을 더 꼼꼼하게 보게 되니 반품하러 갈 일이 없었어요. ‘아 잘 될거야’ 자꾸 그러니까 잘 될 일이 많아졌어요. 역시 사람은 마음 먹기에 달렸나 봐요.”

특히 서지영은 ‘배우’ 일을 하면서 성격도 밝아지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외향적으로 변해갔다. 그래서 스스로를 “행복한 배우”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가족들에게도 표현 못했던 것도 이제는 표현하고 살아요. 사실 사람 마음이란 게 표현을 해야 아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읽지 못해요. 예전엔 무서워하던 오빠에게도 한마디 할 것 더 말하게 되니 가까워지는 게 많더라구요. 배우라는 직업이 저에게 행운과 행복을 가져다 준 것 같아요.”

한편, 서지영은 유다 ‘벤허’라는 한 남성의 삶을 통해 고난과 역경, 사랑과 헌신 등 숭고한 휴먼 스토리를 완성도 높게 담아 낸 창작 뮤지컬 ‘벤허’(연출 왕용범)속 미리암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오는 10월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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