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격적으로 가상화폐를 통한 투자금 모집과 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초강수를 둔 것은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미국이나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만 규제를 느슨하게 두면 해외 가상화폐 사업자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가상화폐를 통한 투자금 모집 사례가 없지만 당국이 현실화 가능성을 두고 선제 조치를 취한 것이어서 관심이 쏠린다.
29일 정부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싱가포르·중국 등 세계 각국이 가상화폐를 통한 투자금 모집(신규 가상화폐공개·ICO)을 규제하는 가운데 규제 무풍지대로 남아 있는 한국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사업자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투기자금을 노리고 진출을 고려하는 ICO팀들이 물밑에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 같은 유입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가 느슨한 한국에서 ICO를 통해 차익을 얻으려는 해외 투기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기업의 재무정보를 오픈한 채 자금을 모집하는 기업공개(IPO)와 달리 ICO는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을 근거로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것이라 자칫 유사수신 등 사기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예를 들어 어떤 비즈니스를 위해 가상화폐를 발행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비즈니스 모델의 현실성을 파악하기 어려워 대규모 투자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이 같은 위험성 때문에 지난 7월 증권법으로 ICO를 규제했고 중국 인민은행은 4일 ICO를 금융사기와 같은 불법 공모행위로 규정하며 전면 금지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거래규모는 코스닥 하루 거래량을 맞먹을 정도로 투기화된 상태이고 미국과 중국에 이은 글로벌 톱3로 급성장했다는 점에서 해외 투자가들이 진출할 유인이 많은 시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의 가상화폐 거래가 급성장하는 가운데 규제가 느슨한 상태가 지속되면 외국 가상화폐 사업자들이 한국에서 ICO를 벌여 투기자금을 빨아들일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또 가상화폐 시장에 투기성 자금이 흘러넘치면서 국내에서도 이 틈에 사기성이 농후한 프로젝트를 통해 ICO를 추진하려는 업체들이 난립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반영됐다. 실제 국내에서는 연말까지 ICO를 추진하는 업체가 20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가상화폐 공개 시장은 눈먼 돈을 노린 ‘악화’가 ‘양화’를 압도할 정도로 넘치는 상황”이라며 “정말 블록체인 기술 혁신을 꾀하는 이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이번 전면금지 조치가) 차라리 잘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국내에 법인을 두고 ICO를 추진하는 곳에 직접 적용되지만 스위스 등 외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에서 ICO 설명회를 여는 경우도 규제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금지조치의 취지는 어디까지나 ‘국내 투자자 보호’이기 때문에 정부는 우회적 방식으로 한국에서 자금을 모집하는 경우에도 어떤 식으로든 제재를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의 일부분이라 이번 조치로 국내 블록체인 기술개발 업체들을 한꺼번에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는 만큼 정교한 규제도입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