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여기서 아는 것이란 지식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른 ‘앎’과 ‘감성’일 수 있다. 아는 만큼 혹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대상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책 ‘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은 한국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서양 미술사로, 중국이나 일본 혹은 남미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과 감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동서 문화교류의 관점에서 서양작가들이 우리의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서 한국이 서양미술사에 어떤 시각으로 그려진 국가였는지를 소개하는데 이것이 숱한 서양 미술사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며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서양미술사 및 근현대미술사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 권위자 중 하나로 손꼽힌다. 책은 저자가 그동안 일간지에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대폭 보완해서 100편을 선정해 ‘신화의 무대’, ‘신앙의 공간’, ‘정치의 매개’, ‘예술과 권력 사이’ 등 8개 장으로 나눠 수록했다.
6장의 ‘이국의 향기를 품은 꽃’에 소개된 ‘놀데의 조선 방문’을 보자. 19세기 후반은 유럽이 비서구 지역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식민지를 개척했던 제국주의 시대였다. 유럽박물관들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지역의 민속품 등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당시 독일 화가 에밀 놀데는 원시미술의 본질과 형태 그리고 자유분방한 표현에 이끌렸다. 그런 그의 작품 중 무릎을 꿇고 있는 아프리카 여인 앞에 마치 가면을 쓴 듯 서 있는 선교사를 표현한 ‘선교사’는 조선시대 장승이 모티브가 됐음을 짐작케 한다. 놀데가 장승의 의미를 알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의 민속 조각을 나란히 둠으로써 화면에는 마술적인 힘까지 느껴진다.
진짜 전문가답게 관련지식 없는 독자도 이해하기 쉽게 서양 미술에 얽힌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펼쳐보인다. 이를테면 37세의 나이에 권총으로 자살한 빈센트 반 고흐는 증권 브로커 일을 하다가 화가가 됐고, 나중에 문명사회를 떠나 태평양 타히티섬에서 일생을 마친 폴 고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두 화가가 같이 그림을 그리고 생활했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였는데, 두 달을 함께 보냈던 이들은 격한 논쟁을 벌였고 반 고흐가 면도칼로 고갱을 위협하자 고갱이 박차고 떠났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면도칼로 잘랐던 것. 2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