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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조앤 롤링' 키우자<상>] 예술인 복지는 투자다

롤링, 정부보조금 받으며 완성한 해리포터로 年 1,000억 수익

한국 예술활동 수입 연평균 1,255만원…36%는 300만원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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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삼성동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전시실에서 박만순 옻칠전 ‘장인 손, 칠과 나전 만나다’展이 열렸다. 이번 전시는 흑칠, 주칠로만 알려진 기존의 정형화된 옻칠을 벗어나 다채로운 색상을 결합한 ‘색나전칠기’가 특별한 볼거리였다. 그런데 이 색나전칠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바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지원금 제도를 통해 탄생했다는 점이다. 한국옻칠공예대전 대상 국무총리상, 대한민국 공예품 대전 산자부장관상 등 숱한 상을 거머쥐며 국내 최고의 옻칠공예 장인으로 꼽히는 박만순 장인이지만 생활고와 비싼 재료비 탓에 작품 활동은 쉽지 않았다. 옻색 1㎏에 35만원선이니 작품 하나를 제작하려면 재료비만 수백만원이 드는 탓이다. 그러나 그는 재단 지원금을 통해 재료를 충분하게 구비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옻칠 장인으로는 드물게 개인전도 열 수 있었다.

조앤 K롤링조앤 K롤링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어도 여전히 바닥 수준인 예술인의 처우 문제는 국내 문화계의 뼈 아픈 단면이다. 해마다 생활고나 작품 실패를 비관한 예술인들이 자살하는 등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음원 수입 한 푼 없이 생활을 이어가다 돌연사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가수 이진원 씨, 2011년 생활고에 자살을 택한 최고은 작가 등 예술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잇따르면서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지원 기관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더 나아가 문재인정부 들어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강화 논의가 확대되고 있지만 근원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예술복지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해리포터’의 성공신화를 탄생시킨 영국의 경우 예술인 복지를 대하는 인식 자체가 우리와 크게 달랐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흥행으로 자산 10억 달러 이상의 ‘세계 부호 클럽’에 합류한 조앤 K 롤링 역시 영국의 탄탄한 복지제도의 수혜자였다. 이혼 후 생후 4개월 딸과 함께 영국 에든버러에 초라한 방 한 칸을 얻은 롤링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1년여간 생활 보조금으로 연명했고 이를 악물고 완성한 ‘해리포터’ 시리즈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롤링이 지난 1년간(2016년6월~2017년5월) 벌어들인 수입은 9,500만 달러(세전·약 1,070억원)로 1분당 평균 180달러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예술인 복지가 일종의 투자 성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가수 이진원씨의 빈소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가수 이진원씨의 빈소



그러나 국내 실정에선 한국판 롤링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의 예술활동 수입은 연간 평균 1,255만원으로 1인당 국민소득(2,938만원)의 42%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조사 대상 예술인의 절반 이상은 연간 300만원 이하의 예술활동 수입에 기대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응답자의 36.1%는 예술활동 수입이 전무했다. 특히 문학(214만원), 미술(614만원), 사진(817만원), 무용(861만원) 분야 예술인은 연간 평균 예술 활동 소득이 1,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 산업 규모(극장 매출 기준)는 4,940억원에서 9,279억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고 올 들어 미술품 경매 최고가는 65억5,000만원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등 문화 시장 파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대다수 예술인들에게는 파이 부스러기조차 전해지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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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현재의 창작지원금 규모와 지원 방식 등을 살펴보면 예술인 지원이 보편적 복지는커녕 기본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736개 직업의 재직자 2만4,288명을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2015 한국의 직업정보’에 따르면 뮤지컬 배우 평균 연봉은 980만원, 특히 앙상블 배우들의 회당 출연료는 고작 4만~10만원 수준이다.

예술인 활동수입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2월 예술인복지법 개정에 따라 서면계약 체결이 의무화됐지만 여전히 많은 비율의 예술인들이 계약서 체결 없이 열정페이를 강요받고 있다는 점은 보통의 근로자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저임금, 추가 근로수당, 주휴수당 등을 보장받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신문고에 접수된 대부분의 민원은 출연료 미지급, 불공정계약 체결 등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들이다. 최근 5년간 접수건 중 88.7%가 임금 체불 등 수익배분 거부, 8.1%가 불공정계약 강요에 해당했다. 예술인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기는커녕 예술인들이 기본적인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방지영 서울연극협회 부회장은 “복지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예술인들의 요구사항들 중 상당수는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들이 많다”며 “지금 상황에선 예술인이 사회의 구휼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구원하는 주체라는 자긍심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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