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동시간 단축 위한 행정해석 폐기 추진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사정 대타협·국회 법 개정이 '正道'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정부의 행정해석 폐기 방안을 놓고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다.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진통을 겪자 정부는 행정해석을 바꿔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재계는 행정해석을 폐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생길 큰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근로시간 단축 효과는 곧바로 발생한다. 주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키는 사업장 대표는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행정해석 폐기 찬성 측은 초과근로 기업에 대한 처벌, 임금 소송 등에 대한 우려는 과장된 면이 많고 행정부의 폐기 방침이 오히려 법 개정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근로시간 단축이 급격히 시행될 경우 중소기업의 심각한 인력난, 경쟁력 저하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만큼 행정해석을 폐기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현재 근로시간은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라 주 최대 68시간까지 근로할 수 있다. 그런데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1주 최대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법 개정 추진의 배경은 지난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이 2,05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706시간보다 350시간 많고 멕시코 다음으로 긴 편이라는 것이다. 이에 2014년 12월 말 노사단체와 정부는 장시간 근로문화를 개선하려는 법 정책 방향에는 공감했다. 나아가 오는 2020년까지 1,800시간대로 실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법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에도 합의한 바 있다. 목표치인 1,800시간대가 되려면 재차 160시간을, OECD 회원국의 평균과 맞추려면 256시간을 각각 단축해야만 한다.

제20대 국회는 3월 고용노동소위원회를 개최하고 근로시간 단축 법안을 집중 논의했다. 당시 여야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대선 후 논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주된 쟁점으로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중복할증, 기업 규모별 단계적 적용, 특별연장근로 8시간 허용 여부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종료됐다.


우선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중복할증 문제가 있다. 현행 고용부의 행정해석은 휴일근로와 연장근로를 별개로 봐 휴일근로시 가산수당에 대한 할증률을 50%만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고등법원의 중복가산 인정(100%) 또는 부인(50%) 판결 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5년째 계류돼 있다. 여전히 휴일근로에 대한 연장근로 가산수당 중복 여부는 소송 중에 있다. 사실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여부에 대한 명확한 법 규정은 없지만 이는 휴일근로와 연장근로 모두 법정 근로시간 외 근로라는 점에서 같은 성질의 것이므로 다른 가산 원인이 중복된다고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법정휴일근로는 휴일근로의 관점에서 법정 외 근로로 평가하기 때문에 주의 연장근로로 계산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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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규모별 단계적 적용과 관련해 중소기업들은 법 개정으로 법정 근로를 주 최대 52시간까지 단번에 단축한다면 절대 인력 부족과 생산성 저하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10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97.5%를 차지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기업 규모별(100인·50인·30인·20인·5인)로 적용 단계를 4~7년에 걸쳐 세분화된 시행 및 보완책 마련을 통한 실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별연장근로 8시간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노사 합의에 따른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함으로 경영 상황에 따라 주 최대 60시간까지 추가 근로가 한시적으로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한 근로시간 단축은 그 전제로 기업 부담을 완화하고 정치,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청와대 본관 접견실로 노동계 대표들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거기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국회 입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면서도 여의치 않으면 대법원 판례나 정부의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등 여러 대안이 있다고 언급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우선 입법 추진할 과제가 됐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대선 공약을 재확인하면서 이제는 필요하다면 정부의 행정해석이 폐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행정해석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행정지침에 따른 노사 관행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게 스스로 번복(폐기)하는 것은 신중하게 처리할 문제다. 대법원 판례는 법관에 따라 재판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행정해석은 법치행정의 원칙상 행정작용이 행정기관에 의해 실현된다. 행정작용과 사법작용 양자의 기본구조가 동일한 셈이다. 국회에서 국회의원이나 정부에 의한 법률 제정·개정도 상호 유사한 구조이다. 서두르기보다 경제 환경에 따라 노동개혁이라는 큰 그림에서, 근로시간 단축도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 대타협과 국회에서의 법 개정이라는 ‘정도(正道)’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면 근로시간 특례업종 및 근로시간 적용제외 제도 개선, 근로시간 저축휴가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 전문 업종에 대한 재량근로시간제 확대, 할증률 50%에서 국제노동기준인 25%로 조정, 업무 방식과 성과에 연동된 ‘화이트칼라 이그잼션제도(근로시간 적용제외제도)’ 신설, 유급주휴의 무급화 검토, 휴가제도 검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근로시간법제의 정비 방향을 함께 설정할 필요가 있다. 미래를 지향하는 진정한 노동개혁을 위한 입법자로 국회의원들의 치열한 고민을 통한 현명한 입법적 결단을 재삼 기대해본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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