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단풍이 지천인데도 나는 가로림만으로 간다’ 편이 전파를 탄다.
충남 서산과 태안 사이에는 둥그런 항아리 모양을 한 바다가 있다. 숲에 이슬을 더한다는 뜻의 이름도 아름다운 가로림만. 무수한 생명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갯사람들에게는 제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 그 깊고 진한 가을 바다를 맛본다.
▲ 어머니의 품, 가로림만이 차려낸 오지리 밥상
가로림만 초입에 있는 충남 서산의 오지리는 가로림만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이곳에서는 개막이라는 전통방식으로 고기를 잡는다. 갯벌에 말뚝을 박고 그물을 둘러 썰물 때 고기들을 가둬 잡는 방법으로 요즘은 망둥이가 한창 걸려든다. 가을이 가장 기름지고 맛있다는 망둥이는 바로 썰어 회로 무쳐 먹어도 좋고, 통째로 튀겨먹어도 고소하다. 두고두고 먹기 위해 말려 먹기도 하는데 말린 망둥이는 물에 불린 다음 양념해서 쪄먹는다. 한창 젊었을 때는 잡은 망둥이를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팔러 다니셨다는 오지리 어르신들, 예나 지금이나 아낌없이 내어주는 넉넉한 바다가 있어 감사하다.
▲ 웅도의 60년 지기 짝꿍의 바지락 한 상
가로림만의 대표적인 섬 웅도는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면 육지와 연결된다. 이곳에는 스무 살에 시집와 60년 동안 친구처럼 자매처럼 지내온 김기생, 이정희 할머니가 있다. 한평생 갯벌에 나가 조개 캐며 자식들 키워냈다는 할머니들, 이제는 갯일 그만둘 때도 되었건만 오늘도 사이좋게 갯벌로 나간다. 그 솜씨가 쌓아온 세월을 증명하듯 보통이 아니다. 올해는 가을 바지락이 봄 못지않게 실하게 여물었다. 바지락 살에 묵은지 송송 썰어 넣어 칼칼한 바지락 김칫국도 만들고, 말린 바지락에 통고추를 넣고 지글지글 끓여 바지락 조림도 만든다. 변치 않는 바다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긴 세월 살아온 두 할머니, 든든한 바다와 한평생 함께 하는 벗이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이다.
▲ 가로림만의 외딴 섬, 고파도 가을 꽃게 밥상
가로림만의 또 다른 섬 고파도는 섬 주민도 찾아오는 사람도 적은 조용한 섬마을이다. 고파도 어촌계장 김기홍 씨는 아내와 함께 매일 바다에 나간다. 외지에 살다 십여 년 전, 김 계장의 고향 고파도로 들어왔다. 처음 부부가 함께 배를 탈 때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둘도 없는 파트너다. 오늘 잡은 꽃게와 붕장어로 무젓, 꽃게 튀김, 게국지, 붕장어조림까지 푸짐한 한 상을 차린다. 진한 가을 바다 내음이 밥상을 가득 채운다. 매일 바다와 씨름하며 사는 삶이지만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돌려주는 가로림만이 있어 행복하다.
▲ 가을 갯벌이 주는 선물, 낙지와 감태
갯벌이 좋은 중왕리는 해마다 낙지 축제가 열릴 정도로 낙지로 유명한 마을이다. 바닷물이 저 멀리 빠져나가자 성기봉 씨가 갯벌로 나온다. 낙지잡이 경력 50년,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낙지를 잡는다. 갯벌이 드러나면 바빠지는 건 마을 아주머니들도 마찬가지. 지천에 깔린 감태 때문이다. 감태는 김처럼 말려서 구워 먹기도 하고 물김치 국물을 넣어 무쳐 먹기도 하는데 쌉쌀한 맛이 좋다. 낙지는 박 속을 나박나박 썰어 넣고 박속낙지탕을 끓이는데, 서산의 전통음식으로 이곳에선 가을철 최고의 보양식이다. 낙지는 많이 잡히지만, 판로가 없던 과거에는 낙지를 말려서 먹기도 했다. 감태와 낙지 덕분에 살림살이 좋아졌다는 중왕리 사람들, 오늘도 어머니처럼 따뜻한 가로림만의 품속에서 감사한 하루를 살아간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