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민영화 1기 이광구 행장이 특혜채용 논란으로 전격 사임을 표명함에 따라 손태승 글로벌부문 겸 글로벌그룹장이 은행의 일상업무를 총괄하기로 했다. 또 임원추천위원회에 정부 측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예금보험공사 추천 인사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일은행 출신 전·현직 임원들이 차기 행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날 비공식 이사회를 열고 ‘은행 일상업무 위양’ 계약을 체결하고 임추위 구성과 차기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사실상 이 행장이 퇴진하게 됨에 따라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고 조직을 조기에 안정화 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은행 사내이사는 이 행장과 오정식 상근감사위원뿐이며 대표이사는 이 행장이 유일하다. 이 행장은 법률상 필요한 업무만 제한적으로 수행 중이어서 일상업무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다. 다만 후임 은행장이 취임할 때까지 본부장급 이상 임직원 인사와 은행장 전결권의 50%를 초과하는 신규사업은 부분적으로 제한된다.
임추위 구성은 정부가 행장 인사에 개입할 가능성으로 인해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정부는 지난 1월 행장 선임 당시 우리은행의 자율 경영에 대한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로 예보 측 비상임이사를 임추위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상황’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어 외부 낙하산 인사에 대한 우려가 크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지분 매각을 통해 과점주주 체제의 민영화에 성공했지만 예보 지분이 18.78% 남아 있어 여전히 1대 주주다.
이사회는 가급적 이달 중 행장 선임을 완료하기 위해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사외이사진은 사태를 수습하고 직원들을 다독이기 위해서는 외부 출신보다는 우리은행을 잘 아는 내부가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에서는 임원 가운데 가장 직위가 높은 손태승(58) 부문장과 정원재(58) 영업지원부문 겸 HR그룹 부문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손 부문장은 전주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나와 한일은행으로 입행했다. LA지점장 등을 거친 글로벌 분야 전문가로 상무 시절 우리금융지주에 파견돼 지주사 업무도 담당했다. 업무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면서도 선임부문장으로서 조직 안정화를 위한 업무총괄 대행 역할로 적임이라는 평가다. 천안상고 출신인 정 부문장은 임원 중 유일한 고졸 출신, 육상선수 출신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지점장과 본부장 시절부터 탁월한 영업능력을 보여줘 임원으로 발탁됐다.
전직 임원들 중에서는 올 초 이 행장과 함께 막판 쇼트리스트에 올랐던 이동건(59) 전 영업지원그룹장과 김승규(61) 전 우리금융지주 사장이 꼽힌다. YB와 OB 모두 한일은행 출신 간의 대결인 셈이다.
다만 임추위가 지원 자격을 외부로까지 확대할 경우 현 정부 지분이 있는 금융권 인사들까지도 대거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