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대륙 황제의 궁인 자금성의 건복궁 문을 열고 황제의 만찬을 대접했다. 명나라 황제 영락제 집권기인 지난 1421년에 완공된 자금성에서 중국 국가 정상이 외국 지도자에게 직접 연회를 열어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에서 후한 대접을 받은 뒤 중국을 국빈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국빈 이상의 ‘급’이 다른 통 큰 환대로 맞이해 미국을 압도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해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기점으로 북핵 문제와 통상 갈등 등 미중 간 난제를 일단락 짓고 지난달 폐막한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새롭게 내세운 글로벌 전략인 ‘신형 국제관계’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방중 첫날 황제를 방불케 하는 환대를 받았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하면서 2박3일의 국빈 방문 일정에 돌입했다.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매체들이 ‘이례적인 특별환대’라고 평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영접을 위해 통상적인 장관급 외교부장이 아닌 25명의 중국 정치국원에 포함되는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공항에 나왔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공항에서 곧바로 자금성으로 이동한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자금성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의 환대를 받았다. 미중 정상 부부는 자금성 내 보온루로 이동해 잠시 차를 마시며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시 주석은 자금성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은 양국 관계 발전뿐 아니라 전 세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면서 “서로 각 분야 공동 관심사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큰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CCTV는 전했다. 시 주석은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대회 결과를 설명하며 중국의 최근 경제·사회 발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경제 발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이번 방중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패드에서 외손녀 아라벨라가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중국 옛 시를 읊는 동영상을 시 부부에게 보여주자 시 주석은 아라벨라의 중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면서 “A+를 줄 수 있겠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양국 정상은 이어 청나라 시대 서태후가 경극을 보기 위해 자주 찾았던 창음각으로 자리를 옮겨 손오공을 소재로 한 경극 ‘미후왕’을 함께 관람한 뒤 건복궁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했다. 1740년 건륭제의 화원으로 지어진 건복궁은 건륭제가 틈틈이 찾아 시를 읊었던 곳으로 알려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둥젠화 당시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이곳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환영 연회를 열기도 했지만 시 주석이 직접 외국 정상을 맞아 만찬을 베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자금성 참관에는 시 주석은 물론 부인 펑 여사까지 나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함께 황제만이 다니는 길인 고궁 중축선을 따라 이동하며 자금성의 역사와 건축물을 직접 소개해 트럼프 대통령의 감탄을 유발했다. 특히 중국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1인 만찬을 위해 자금성 전체를 통째로 휴관해 화제를 모았다. ‘황제 골프’로 주목을 받았던 일본의 ‘오모테나시’와 격을 달리하는 명실상부한 황제 접대를 위해서다. 이날 자금성 주변과 베이징 시내 곳곳은 지난달 당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보안요원이 배치되고 자금성 앞 장안대로와 공항고속도로 등이 전면 통제됐다.
리하이둥 중국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문화의 상징적 공간인 자금성에서 중국 정상 만찬에 초대된 첫 미국 대통령”이라며 이번 자금성 연회가 양국 정상의 만남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행사라고 평가했다.
중국 매체들도 트럼프 대통령 방중에 의미를 부여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관영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아시아 순방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이라며 “앞서 방문한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이번 방중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 방문”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도 1면 논평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 이후 첫 해외 정상의 국빈 방문”이라며 “이번 방문을 통해 중미관계가 신시대의 역사적인 새 기회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오전에 인민대회당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문제와 통상 갈등 등에서 담판을 벌인다. 정상회담 후에는 양국 기업인들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갖고 오후에는 리커창 총리와 회동한 뒤 저녁 만찬에 참석한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