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활동 모습을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가상화폐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도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가상화폐는 경제활동의 패러다임을 바꿀 강력한 무기이자 매력적인 투자수단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가상화폐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중국이 가상화폐 공개(ICO·증권거래소의 기업공개처럼 가상화폐를 상장하거나 투자금을 모집하는 것)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비트 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 가격이 20%까지 급락했다. 하지만 급락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3주 만에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다. 전체 가상화폐 시장에서 46% 비중을 차지하는 비트코인의 가격은 9월 중순 3,600달러에서 10월 중순 5,269달러까지 올랐다. 중국의 수요 증가와 일본에서 정식 결제수단이 되었다는 뉴스 등으로 비트코인 가격은 연초 대비 400% 이상 상승했다.
비트코인은 탄생한 지 7년 만에 약 60만 배가 올랐다. 비트코인 가격은 2009년 초엔 약 10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약 630만 원을 기록하고 있다. 200만 원까지 오르는데 4년 정도가 걸렸지만, 2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오르는 데는 한 달밖에 안 걸렸고, 400만 원까지 오르는 데는 채 6일이 걸리지 않았다. 올해 안에 1,000만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가파른 가격 상승을 보인 가상화폐는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의 하루 거래액은 약 2조 5,000억 원으로, 이미 코스피 거래 규모 약 2조 2,000억 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국내에선 약 10여 개 가상화폐 거래소가 성업 중이며, 하루 가상화폐 거래 규모는 약 3조 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가상화폐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은 ‘제2의 인터넷 혁명’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블록체인은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반기술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암호학과 분산시스템에 기반을 둔 블록체인 기술은 특정한 제 3자가 거래를 보증하지 않아도 각 거래 당사자끼리 부인할 수 없는 방법으로 데이터를 전달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가상 화폐로 거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해킹을 막는 핵심 기술로, 거래가 성립되는 즉시 거래 내역이 안전한 방법으로 생성돼 네트워크에 공유된다. 거래 과정에서 공증 등의 다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안전하고 신뢰도 높은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상화폐 거래의 안정성을 보증하는 확실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거래 장부 자체가 공유돼 수시로 검증이 이뤄지기 때문에 원칙적으론 해킹이 불가능하다.
최근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는 이른바 ‘투기적 거품’이기 때문에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격은 광풍처럼 오르지만, 실생활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상화폐는 투기적 시장이라는 것이 UBS의 지적이다. 그 외에도 새로운 가상화폐의 탄생이 공급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늘릴 수 있다는 점, 가상화폐에는 경제적 펀더멘털(Fundamental)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 가치를 정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현재 통용되는 가상화폐는 실제로 약 1,000가지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지금도 새로운 가상화폐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UBS는 “각국 정부가 가상화폐로 세금을 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가상화폐는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며 “그럼에도 각국 정부가 이를 허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업이나 사회에서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세금은 법정 화폐로 내야 하기 때문에 가상화폐가 환위험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가상화폐로 인해 앞으로 세계 경제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각국 중앙은행이 가상화폐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고 지적하며 “가상화폐 금융 기술 상품들이 이미 금융 서비스를 파고 들고 있는데, 금융 기관들이 이를 제대로 모니터링 하지 않는다면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좀 더 거친 표현으로 가상화폐 시장을 비판했다. 그는 “비트코인은 사기”라며 “네덜란드의 튤립 거품 다 훨씬 더 심각한 거품 경제임에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튤립 거품’은 17세기 때 네덜란드 튤립에 대한 광풍 투자가 일어나 튤립 가격이 집값보다 비싸게 상승했지만, 결국 거품이 꺼져 경제공항으로 이어진 사건을 말한다.
최근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의 추적이 가능하도록 가상화폐를 원화로 바꾸는 과정을 실명으로 하도록 제도화했다. 개인에게 가상화폐 구매에 필요한 거래소 가상계좌를 부여하는 은행은 이용자 이름, 은행계좌 등을 확인해야 한다. 그 밖에도 정부는 가상화폐 공개(ICO)를 금지했다.
한편 많은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 규제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가상화폐가 현실경제로 들어오고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정부 규제가 오히려 가상화폐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가상화폐는 실생활에서 상당 가치의 재화로도 교환되고 있어 이를 실체 없는 거품으로 단정할 순 없다는 지적도 많다.
많은 사람들은 19세기 골드러시 기간 동안 금을 캐기 위해 미국 서부로 모여들었다. 전 세계에서 30만 명 이상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하지만 정작 금을 캐서 돈을 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채굴에 필요한 장비나 청바지 같은 물품을 파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금광 산업이 원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일종의 거품 경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금광시대 거품경제 덕분에 미국은 철도산업 발전과 공업화를 이뤘고, 그 결과 서부지역 발전과 미국 번영의 동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거품 경제가 세계 경제를 이끌어 왔다. 금융, 반도체, 녹색에너지 등이 그것이고, 현재도 가상화폐에 대한 거품이 또 한 차례 크게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거품경제가 일어날 때마다, 전 세계는 거기에 맞춰 관련 산업을 확대해 부흥을 꾀해왔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법정화폐로 인정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기존 화폐와 가상화폐가 교환될 수 있는 신뢰가 형성되면, 가상화폐는 이미 디지털 화폐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다. 새로운 금융체계인 가상화폐가 지금 국가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세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한국도 가장 큰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등 가상화폐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를 앞세우기보다 이런 장점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금융 강국인 미국, 중국을 제치고 새로운 금융체계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가상화폐는 전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변화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입장에선 금융의 새로운 글로벌 모멘텀을 찾을 수 있는 충분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안병익 대표는…
국내 위치기반 기술의 대표주자다. 한국지리정보 소프트웨어 협회 이사, 한국공간정보학회 상임이사, 한국LBS산업협의회 이사를 역임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포인트아이 대표이사를 지냈고, 지난 2010년 위치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 씨온(현 식신 주식회사)을 창업해 현재 운영 중이다.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글_안병익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