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 예방을 위한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크게 확대됐지만 정작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들은 이를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개별 국가의 노력만으로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관리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금융 안정을 위한 국제적 협력 시스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1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아시아 외환위기 20년 후’를 주제로 공동개최한 ‘2017년 글로벌 금융안정 컨퍼런스’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글로벌 금융안전망은 금융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관리하기 위한 국제 협력 시스템을 뜻한다. 국가 간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교환할 수 있는 협정인 통화스와프가 대표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단기 유동성 위기에 몰린 우량 회원국들을 위해 IMF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인 신축적 신용공여(FCL), 예방적 유동성 지원(PLL)도 이에 속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고 축적, 거시건전성 정책 도입, 국제 금융협력 강화 등 여러 조치를 해왔다”며 “그 결과 외환보유액은 1997년 저점을 찍은 뒤 빠르게 늘었고,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두고 외환위기 당시보다 훨씬 큰 자본 유출입을 겪었지만 잘 견뎌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두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 거시건전성을 확충하고 자본이동을 관리하기 위한 우리나라 스스로의 노력이 빛을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또 한 번 닥칠 수 있는 위기에 대응하려면 개별 국가의 거시건전성 관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게 국내외 석학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이동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외환보유고를 쌓는 건 위기 예방 차원에서 효과가 있지만 재정 비용, 민간 부문의 달러화 차입, 도덕적 해이 등 대가도 커진다”면서 “또 (글로벌 금융안정 차원에서는) 신흥국의 외환보유고가 커지면 선진국의 유동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부작용을 우려했다. 외환보유액을 무조건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란 뜻이다.
김준일 IMF 조사국 고문도 “개별적으로 충격을 인내하는 역량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사회 공조를 활발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급격한 자본 유입을 초래하는 글로벌 요인들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연착륙할 것인지 위기로 이어질 것인지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참석한 아눕 싱 조지타운대 교수도 글로벌 유동성을 관리하기 위한 국제적인 관리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유동성 위기에 비교적 취약한 아시아 신흥국들은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아시아 13개국의 역내 자금지원제도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IMF의 대출 제도는 부정적인 ‘낙인효과’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이 이용을 꺼린다”며 “이 때문에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실제로 큰 도움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들이 IMF 자금지원제도를 포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세부적 조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세계 금융 환경이나 국제 협력 시스템이 아닌 개별 국가의 조치가 금융 위기 대응력을 결정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날 컨퍼런스에서 기조 연설을 한 에드윈 트루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 및 전 미국 재무부 차관보는 “금융위기에 취약한 국가들은 세계 금융 환경 때문이라기보단 (위기 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