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대표적 독재자인 로버트 무가베(93) 대통령이 37년 동안 군림해온 짐바브웨에서 군부세력이 정권과 방송 언론을 장악하고 대통령 내외의 신변을 확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부패와 경제침체가 극심한 짐바브웨에서 세계 최장수 국가원수인 무가베가 초호화생활을 누리며 권력까지 세습하려 하자 군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군부는 이번 사태의 목적이 쿠데타가 아닌 적폐세력 축출이라고 밝혔지만 국제사회는 사실상 쿠데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AP뉴스에 따르면 짐바브웨 군부는 15일 오전4시께(현지시각) 자신들이 접수한 국영방송사 ZBC를 통해 정권장악 소식을 알리고 대국민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방송에 등장한 S B 모요 장군은 성명에서 “우리는 사회와 경제 문제를 일으킨 범죄자들을 재판장에 서도록 만들겠다”며 “이번 행동은 정권 전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최우선적으로 무가베 대통령과 국가의 안위를 보장하고 싶다”며 “무가베 동지와 그의 가족들은 안전하며 그들의 신변은 보장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표는 전날 밤 군이 방송사를 접수한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전날 짐바브웨 수도인 하라레에서 약 100명의 군인이 시내로 진입하고 탱크도 여러 대 목격됐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이날 아침에는 무가베 사저 근처에서 수차례 총성이 울렸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한 주민은 AFP통신에 “오전2시를 갓 넘겼을 때쯤 무가베 대통령 사저 쪽에서 3∼4분간 30∼40발의 총성이 들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이 무가베 대통령과 통화했다”며 “무가베 대통령이 자택에 갇혀 있지만 신변에 이상은 없다”고 대통령의 가택연금을 확인했다. 이어 남아공은 짐바브웨 군부에 “헌법을 존중하지 않은 정권교체로 혼란이 확산되지 않길 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지난 37년간 권력을 장악해온 무가베 대통령의 후계를 둘러싼 잡음에서 촉발됐다. 대통령 부인인 그레이스(52) 여사는 무가베 대통령의 건강이 악화하자 최근 2년간 자신의 세력을 불리며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려왔다. 그레이스 여사의 압박 속에 무가베 대통령은 지난 6일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던 에머슨 음난가그와 부통령을 전격 경질했다. 그레이스 여사는 부통령 경질 발표 하루 전 무가베 대통령에게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하도록 요청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혀 논란을 빚었다.
무가베 대통령과 함께 1980년 짐바브웨 독립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던 음난가그와 부통령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의 최측근인 콘스탄틴 치웬가 장군은 앞서 쿠데타를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13일 기자회견에서 “해방전쟁에 참전한 정당 인사들을 겨냥한 숙청을 당장 멈추라”며 “군은 혁명을 보호하기 위한 개입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모요 장군은 성명에서 “이달 13일 우리 입장을 밝혔지만 ZBC는 물론 언론들이 이를 외면했다. 이는 우리가 또 다른 단계로 움직이는 계기가 됐다”며 군 행동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군부의 총구는 집권여당인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 핵심인사들을 향하고 있다. 군은 이날 이구나티우스 촘보 재무장관을 감금한 것으로 전해졌다. 촘보 장관은 여당 내 그레이스 여사 파벌인 ‘G40’의 핵심인물이다. 여당은 성명을 내고 치웬가 장군이 반역행위를 하고 있다며 군을 비판했다.
군은 자신들의 행위가 체제 전복으로 비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나라 안팎에서 쿠데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모건 창기라이 전 짐바브웨 총리의 정치 조언가였던 알렉스 말가이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쿠데타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짐바브웨 군의 행동은 명백한 정권탈취”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