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은 법 위반 행위가 명확하지 않으면 대대적인 조사가 제한된다. 기업들이 법을 위반했다는 ‘사실(팩트)’을 가지고 조사해야지 ‘의심’만으로 모든 기업들을 뒤지고 다닐 수 없도록 ‘제어 장치’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계획하고 있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전수조사’가 논란이 되는 이유도 이 같은 공정거래법의 규정에서 비롯한다. 권한을 넘어서 자칫하다가는 ‘과욕’을 부릴 여지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물론 대기업 공익법인들이 설립 취지와 달리 계열사 지배력 강화를 위해 활용되고 있고 세제혜택을 받은 만큼 공익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상조 위원장 역시 ‘의심’이 가는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들을 전수조사한 뒤 관련 제도를 정비하거나 법 위반 행위가 발견되면 제재하면 된다고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 등에서는 공정위의 이 같은 접근 방식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조사권 남용’ 등의 법적 분쟁은 물론 김상조식 재벌개혁의 지속 가능성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상 보유하고 있는 조사권은 4가지다. 독과점 시장에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시장구조 조사(법 제3조)를 비롯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지정을 위한 자료 제출 요구(법 제14조) △공정거래법의 규정을 위반한 혐의가 있을 경우 직권조사(법 제49조) △공정거래법 시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의 조사(법 제50조) 등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공익법인에 대한 전수조사의 근거는 공정거래법 제14조만 해당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독과점 시장을 겨냥한 법 제3조는 그 성격이 달라 적용하기 어렵고 공익법인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조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제 49조상 직권조사 대상도 될 수 없다고 봤다. 또 법 제50조상 공익법인 조사가 ‘공정거래법의 시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도 불분명해 행정조사 발동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입법조사처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제14조상의 자료제출요구권을 통해 해당 조항에 명시된 유형의 자료만 확보한 뒤 그 외 필요한 자료는 행정조사기본법 제5조에 따라 기업들의 자발적 협조를 얻어 추가 자료를 입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공정거래법 제14조상 요구할 수 있는 자료가 상당히 일반적인 수준인데다 공정위도 이미 파악하고 있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요청할 수 있는 자료는 △회사의 일반 현황 △회사의 주주 및 임원 구성 △특수관계인 현황 △주식소유 현황 등이다. 공정위가 공익법인의 위법한 행위를 적발하거나 제도를 개선하는 데 이들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재벌개혁의 성과’를 위해 조사권을 남용할 개연성이 있다. 특히 행정조사기본법 제4조에 따라 ‘최소한의 조사’만 가능하다고 한 부분은 조사를 하는 공정위와 피조사 기업의 시각차가 뚜렷해 소송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과도한 조사는 행정조사법 4조에 따라 위법성이 있다고 보는 만큼 공정위는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 전수조사 과정에서 월권행위를 하면 안 된다”며 “법적 권한 안에서 하지 않으면 오히려 공정위가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조사권을 남용해 기업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2005년 공정위가 삼성전자의 하도급거래 위반행위를 조사하면서 사내 전산망 전체 자료를 열람하려고 시도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의 임원은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거부했고 공정위는 조사 방해로 과태료 2,000만원을 부과했다. 소송 끝에 공정위는 패소했다. 재판부가 “전산망 열람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 내 조사로 보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는 검찰처럼 영장을 받아 조사하는 게 아니라서 기업들의 자발성에 의존해야 하는 게 큰데 그것 때문에 법적 분쟁이 꽤 많다”며 “‘최소한의 조사’라는 개념에 뚜렷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공정위가 공익법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케이스별로 과도하다 싶으면 분쟁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