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급락에도 존재감 없는 당국...'수출보다 내수 택했나' 분석도

北 도발도 막지 못한 원화강세...환율 2년7개월래 최저

원·달러 환율이 연일 급락하는 가운데 29일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글로벌마켓영업부 딜러들이 심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이호재기자원·달러 환율이 연일 급락하는 가운데 29일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글로벌마켓영업부 딜러들이 심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원·달러 환율이 이틀 연속 연저점을 경신하면서 29일 1,080원선이 깨졌다. 북한이 75일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지만 환율 하락을 막지는 못했다. 이 추세라면 내년 상반기에는 평균 환율이 달러당 1,050~1,06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1,080원선 붕괴로 원·달러 환율이 지난 9월 말 이후 두 달 만에 70원(6.3%) 넘게 급락하자 정부가 수출 대신 내수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환율이 급락한 이날도 변동폭을 관리해야 할 외환 당국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론상 원화가치가 높아지면 수출기업은 어려움을 겪는 반면 국민들의 구매력이 커져 내수 활성화에 유리하다.


2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원60전 급락한 1,076원80전에 거래를 마쳤다. 연중 최저 수준은 물론 2015년 4월29일(1,068원60전·종가 기준) 이후 2년7개월 만에 가장 낮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1,090원이 깨진 후 1,080원이 1차 지지선으로 여겨졌지만 오늘 이마저 맥없이 무너졌다”며 “정부가 정말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욕심내는 것은 아닌지 의아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최근 원화가 강세이기는 하지만 숫자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라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음에도 시장은 지나치게 가파른 원화 강세에 부담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환율 하락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석유화학업종 대기업 관계자도 “환율 급락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환율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이전에는 적극적인 시장 개입으로 환율의 방향성 자체를 만들어가려 했다면 지금은 일정 수준에서 변동성 관리만 하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文 소득주도 성장 위해선 원高 유리


구매력 높여 소비·경기 활성화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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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압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통상 문제 탓이 크겠지만 원화 강세가 소득주도 성장과 대기업 지원정책 배제라는 정부 철학과 들어맞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고환율에 따른 대기업의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새 정부는 ‘저환율→구매력 상승→소비 증가→경기 활성화’를 노린다는 얘기다.

은행들은 수출이 많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구두경고를 할 때도 실제 개입물량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며 “수출 중소기업들도 1,090원까지는 환율 변동 가능성에 대비해왔지만 최근 급락세가 계속되면서 환손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져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저환율이 굳어지면 자동차와 조선 대기업과 수출 중소기업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포인트 하락할 때 수출가격은 1.9%포인트밖에 오르지 않아 수익성이 나빠진다. 주요 경쟁국인 중국·일본과의 격차도 커진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중국이 같은 품목을 지속적으로 수출하는 경합거래 건수는 2005년 2만6,000건에서 2015년 5만5,300건으로 두 배가량 뛰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국내 자동차 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자동차 업계의 매출은 약 4,200억원 감소한다.

일각에서는 과거 저환율 정책의 부작용이 재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금처럼 세계 경기와 수출이 호조를 나타냈던 노무현 정부 때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평균 1,191원85전에서 929원16전으로 28% 떨어졌다. 당시 저환율 정책의 목표는 지금과 비슷했다. 수입가격을 낮춰 물가를 잡고 서민들의 소득을 늘려주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수출은 곤두박질쳐 2008년에는 무역수지가 11년 만에 132억6,741만달러 적자를 냈다.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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