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파워팩)’도 문제고 생산은 아예 중단 상태인 K2흑표전차. 언제쯤 생산라인이 다시 돌아갈까. 일러야 내년 말부터나 가능하다. 이나마 불확실성이 제거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흘러갈지 누구도 기약할 수 없었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문제의 변속기 개발업체인 S&T중공업에 기회를 한번 더 주기로 최근 결정함에 따라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게 됐다. 최악의 경우 파워팩의 신뢰성 문제로 K2전차 생산배치 자체가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7년 지연되고 축소된 이유 두 가지=지난 2003년 흑표전차의 정식 개발이 결정될 당시 양산 목표는 2009년. 개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1995년부터 기초연구를 진행해온데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중점사업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2007년도에는 시제차량까지 나왔다. 2005년 터키에 K2전차 관련 기술을 수출할 정도로 완성도 역시 높았다. 그러나 주요 구성품 가운데 단 하나는 그렇지 못했다. 엔진과 변속기로 구성되는 국산 파워팩은 연달아 말썽을 부리며 사업 자체를 지연시켰다.
사업이 늘어지면서 생산수량도 줄어들었다. 당초 계획했던 물량은 680여대. 군은 2010년대 후반 이 같은 K2전차가 확보되는 대로 90㎜ 전차포를 사용하는 미국제 구형 M-48전차를 도태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 대수가 390대를 거쳐 206대로 깎였다. 2016년 합동참모본부와 육군의 소요 제기로 3차 양산분 118대를 더 만든다는 계획을 세워 전체 생산량을 320여대로 가까스로 늘려놓은 상태다. 지금까지 생산량은 1차 양산분 106대가 전부다.
계획대로 생산됐다면 적어도 3개 기계화보병사단의 전차 전부를 차지했을법한 K2전차를 가진 부대는 3개 대대(전차 수가 적은 기갑수색대대 포함)뿐이다. 생산이 늦어지고 물량이 줄어든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돈. 공격용 대형헬기 도입 등에서 우선순위가 밀렸다. 지연된 것은 전적으로 파워팩 때문이다. 2차 양산분 100대 생산이 차질을 빚은 직접적 이유가 바로 변속기에 있다.
◇파워팩만 없는 전차 50여대 심장 장착 대기 중=국산 엔진과 변속기가 문제를 일으키며 전력화가 지연되자 대타가 나왔다. 1차 양산분에는 시제 차량에서 성능이 검증된 독일 MTU 엔진과 RENK사 변속기가 결합된 파워팩을 장착하기로 결정, 2014년 7월부터 실전 배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 소식이 없다. 언론의 뭇매를 맞았던 두산인프라코어사가 제작한 전차 엔진에서는 더 이상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반면 S&T중공업이 개발한 변속기에서 크고 작은 결함이 발생해 생산이 아예 중단됐기 때문이다. 각 구성품을 모아 최종 조립·검수·납품을 책임지는 체계통합 업체인 현대로템사 창고에는 파워팩만 달지 않은 채 조립을 마친 K2전차 50여대가 쌓여 있다.
◇‘도저히 못 쓴다’ vs ‘기준 내려달라’=국산 파워팩이 제 성능을 낼 것이라는 판단 아래 2차 양산분 100대를 2016년 말부터 생산 배치하려던 군의 계획도 틀어졌다. S&T중공업의 파워팩 시제품은 합격점을 받았으나 막상 양산된 제품은 품질을 인정받지 못했다. 방산제품에 대한 수많은 검사 가운데 첫 단계인 ‘단품 내구도’ 검사의 문턱에 걸렸다. 2016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여섯 차례 평가에서 S&T중공업의 변속기는 오일 순환펌프가 파손돼 기름이 새고 변속장치가 닳거나 주요 부품에 금이 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급기야 6차 결함 원인분석 과정에서는 관련 기관이 봉인한 변속장치를 S&T중공업이 무단으로 해제해 임의로 정비한 뒤 이를 숨긴 채 시험 재개를 요구한 사실이 적발된 적도 있다. 군 안팎에서는 ‘도저히 쓸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제작업체도 할 말은 있다=제작업체인 S&T중공업은 “2016년 11월 중순, 모든 관련 당국과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고장 난 부품만 교체해가며 내구도 검사를 진행하자고 합의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며 “9,800개로 이뤄진 초정밀제품인 변속기의 부품 가운데는 아직도 규격화가 진행 중인 부품도 많다”고 밝혔다. 규격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내구도 검사는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S&T중공업은 방위사업청에 ‘내구도 검사 기준 완화’를 요구했다. 취하했지만 방사청을 상대로 법정 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방사청은 ‘기준완화’ 요구를 일축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내구도 검사 기준을 낮춰주면 전례로 남아 국방 조달품목 전체의 품질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겉은 ‘한번 더 기회’, 속은 ‘최후통첩’=방사청은 내구도 검사 계속을 요구하고 S&T중공업은 이를 거부하는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29일 열린 방추위는 ‘S&T중공업이 한번 더 내구도 테스트를 받을 기회를 주되 여전히 거부하거나 내구도 기준에 못 맞출 경우’ 두산 엔진과 독일 RENK사 변속기를 결합한 파워팩을 K2전차에 장착할 계획이다. S&T중공업 입장에서는 최후통첩을 받은 셈이다. S&T중공업 고위임원은 방추위의 결정에 대해 “현재 규격으로는 내구도 검사를 받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팽팽하게 맞선 방사청과 업체 간 다툼이 주목된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